순환경제 비즈니스,
어떻게 돈이 되는가
글. 김영춘
폐기물은 오랫동안 돈을 들여 처리해야 하는 비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용 후 배터리와 폐타이어에서 산업 원료를 만들고, 사용한 제품을 수리·재제조해 판매까지 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재활용하느냐가 아니다. 이미 투입한 자원과 제품에서 얼마나 여러 번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느냐다. 순환경제가 환경을 넘어 성장 전략으로 주목받는 이유다.
폐기물이 ‘원료’가 되는 순간
미국의 레드우드 머티리얼스(Redwood Materials)는 사용 후 리튬이온배터리와 제조 스크랩에서 리튬·니켈·코발트·구리 등을 회수하고 이를 다시 배터리에 투입할 수 있는 소재로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다. 단순히 폐배터리를 처리하는 회사라기보다 폐기물에서 핵심 광물을 생산해 다시 배터리 공급망으로 돌려보내는 소재기업에 가깝다. 국내에서는 성일하이텍이 대표적이다. 성일하이텍은 배터리 재활용 전문기업으로 기존 니켈·코발트·망간계 배터리를 넘어 LFP, 전고체, 리튬메탈 등 차세대 배터리까지 재활용 기술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폐타이어도 새로운 원료가 된다. 국내 기업인 엘디카본(LD Carbon)은 폐타이어를 열분해해 재생카본블랙(rCB)과 열분해유를 생산한다. 원래 폐기물 처리 대상이었던 타이어가 고무·화학산업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소재와 원료의 공급원이 되는 것이다. 이 기업들은 폐기물을 없애는 데서 사업을 끝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폐기물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원료로 다시 만드는 순간 ‘처리비용’은 ‘원료 매출’로 바뀌고, 순환경제에서 폐기물 산업은 처리 산업에서 원료산업, 즉 ‘2차 소재 산업’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버려진 물질(물건)이라고 해서 저절로 자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재질과 이물질이 섞인 폐기물에서 가치 있는 자원을 정확히 찾아내야 한다. 여기에서도 새로운 중소기업 시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국내 기업인 에이트테크(AETECH)는 AI 비전과 로봇을 결합한 폐기물 선별 로봇 ‘에이트론’을 개발해 공공·민간 재활용 선별 시설에 공급하고 있다. 에이트테크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폐기물 데이터를 기반으로 폐기물을 인식해 자동 선별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국내 기업 수퍼빈(SuperBin)은 다른 접근을 한다. AI 무인회수기 ‘네프론’으로 페트병과 캔 등을 회수하고 자체 물류를 거쳐 재생 소재 공장에서 r-PET 원료를 생산·판매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회수·운송·재생원료 생산을 하나의 사업 모델로 연결한 사례다. 이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순환경제에서는 재활용 공장뿐 아니라 회수하고, 찾아내고, 분류하고, 품질을 높이고, 데이터를 관리하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시장이 된다.
제품의 두 번째 시장을 만들다
순환경제의 더 큰 기회는 제품의 가치를 오래 유지하는 데 있다. 미국의 건설기계 제조기업인 캐터필러(Caterpillar)는 오래전부터 ‘Cat Reman’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사용이 끝난 엔진이나 부품을 ‘코어(Core)’라는 자산으로 회수하고 이를 분해·세척·검사·복원해 재제조 부품으로 다시 판매한다. 고객이 사용한 코어를 반환하면 재제조 제품 구매 시 경제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 회수까지 사업 모델 안에 넣었다. 프랑스의 글로벌 자동차 기업 르노(Renault)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신차를 생산하던 플린스 공장을 유럽 최초의 자동차 순환경제 산업 거점인 ‘Refactory’로 전환했다. ‘Refactory’는 단순한 중고차 재생공장이 아니라 중고차 리퍼브(Re-New)부터 사고 차 수리, 내연기관차의 전동화 개조, 배터리 수리·재사용, 부품 재제조, 폐차 유래 소재의 폐쇄루프(Closed-loop) 재활용까지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결합한 차세대 비즈니스 모델이다. 르노는 이 모델을 스페인 세비야와 바야돌리드, 튀르키예 부르사 등 주요 해외 거점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 변화는 중소기업에도 중요하다. 제품을 오래 사용하려면 회수와 역물류, 잔존수명 진단, 비파괴검사, 정밀 세척, 표면처리, 부품 복원, 품질검사, 보증 서비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품 하나를 팔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수·진단·수리·재제조·재판매·유지보수’라는 두 번째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버려지는 자원을 기업과 기업 사이로
순환경제의 범위를 공장 밖으로 넓히면 더 큰 시장이 보인다. 한 기업에서 발생한 부산물이나 폐열을 다른 기업이 원료와 에너지로 사용하는 ‘산업공생(Industrial Symbiosis)’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공동연구센터(JRC)가 최근 분석한 CORALIS 프로젝트에서는 화학·철강공정의 부산물 활용과 함께 스웨덴 펄프·제지공장의 저온 폐열을 인근 약 10㏊ 규모 온실에 공급하는 사업 등이 실증됐다. 이 사례에서 연간 2만9,000톤 이상의 이산화탄소 감축이 예상됐다. 더욱 주목할 만한 사례는 독일의 도금 공정 대상 IntelWATT 프로젝트다. 폐수에서 크롬과 구리를 최대 95%, 니켈을 50%, 담수를 65%까지 회수하면서도 기존 방식 대비 에너지 사용량을 95% 이상 획기적으로 줄였다. 투자 회수 기간 역시 약 1년에 불과해 해당 기업은 이를 해외 사업장으로 전면 확대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이 사례가 기업에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원료구매비와 폐기물 처리비, 에너지 비용이 줄고 투입한 돈을 회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올 때 기업은 ‘환경에 좋다’는 명분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기술을 시장으로 연결하려면
순환경제가 돈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과 시장 사이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 JRC가 유럽의
12개 산업 전환 프로젝트를 분석한 결과, 많은 기술이 이미 실증단계에 올라와 있지만 실제 확산을 가로막는 병목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복잡한 규제와 인허가, 인프라 부족, 높은 초기 투자비, 불확실한 수요 시장이 상용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순환경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훌륭한 재생원료를 만들어도 구매할 기업이 없다면 사업은 지속될 수 없다. 산업 부산물에서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도 법적으로 계속 폐기물 취급을 받는다면 시장 진입이 어렵다. 품질기준과 제품인증이 없다면 수요 기업 역시 선뜻 사용할 수 없다. JRC의 ReActiv 프로젝트에서도 알루미나 생산 부산물을 가공해 시멘트 클링커를 최대 30% 대체할 수 있었지만 실제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폐기물·부산물·순환원료 가운데 어떤 법적 지위를 갖는지와 제품표준 문제가 중요했다. 따라서 순환경제 정책도 이제 ‘얼마나 회수하고 재활용했는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자원이 실제 얼마의 가격으로 누구에게 다시 팔리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순환경제에서 반드시 거대한 폐배터리 제련소나 폐기물 처리시설을 운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원의 흐름이 중간에서 끊어지는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역물류, AI 선별, 재생원료 품질인증, 잔존수명 진단, 산업 공생 중개까지. 앞서 살펴본 사례들처럼 순환이 끊기는 곳마다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특히 제조 현장을 잘 아는 중소기업에는 기회가 있다. 어느 공정에서 어떤 부산물이 발생하는지, 어떤 부품이 먼저 고장 나는지, 어떤 소재가 분리하기 어려운지를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동화·소재·진단·데이터 기술을 결합하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순환 비즈니스가 만들어질 수 있다.
결국 순환경제의 본질은 폐기물을 잘 처리하는 데 있지 않다. 한 번 투입한 자원과 제품에서 얼마나 여러 번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려해 비즈니스를 설계하는 데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활용을 잘하는 경제’가 아니라 ‘순환하는 것이 기업에 더 돈이 되는 경제’다. 폐기물은 사업의 끝이 아니다. 다음 사업이 시작되는 원료다.
Profile. 김영춘
-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