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기반 진단·
예측 고도화
IT 기업들,
헬스케어 강자로
글. 김기록
AI와 데이터 기반 서비스의 확산은 산업 간 경계를 사실상 지우고 있다. 특히 의료·웰니스와 IT의 결합은 이제 ‘융합’을 넘어 하나의 연속된 시장으로 변모했다. 헬스케어는 병원 밖 일상으로 확장됐고 IT 기업들은 이 변화 속에서 주도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 장벽이 무너진 지금, 헬스케어 비즈니스가 왜 미래 전략의 핵심 전장으로 부상했는지 살펴본다.
산업 경계가 사라진 자리에서 드러난
Care 도메인의 확장
지난 1월 CES 2026에서 여러 부스 방문 및 세미나를 통해 업계의 리더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다시 한번 업종 간 경계가 사실상 무의미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점을 실감할 정도로 기업들은 더 이상 산업 분류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삼일 PwC가 제시한 Value in Motion 관점도 같은 맥락이다. 산업을 상자처럼 나누는 대신 인간의 삶을 따라 이동하며 재구성되는 가치의 흐름(Value Flow)으로 시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조·금융·의료처럼 고정된 업종 구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AI와 데이터 기반 경제에서는 가치가 특정 산업 안에 머무르지 않고 고객의 일상 전반으로 확장된다. 이 시각에서 보면 헬스케어는 더 이상 ‘의료’ 카테고리에 한정되지 않는다. 인간의 하루를 구성하는 수면, 식습관, 운동, 스트레스 관리, 질병 예방 등 다양한 돌봄의 순간 모두를 아우르는 Care 도메인1)으로 확장된다.
Care(돌봄)의 본질은 ‘치료’가 아닌 일상 속 지속적인 관리와 예방에 있다. 현재의 돌봄은 더 이상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스마트워치, 패치형 센서, 카메라 기반 모니터링 솔루션은 24시간 생체 데이터를 수집하고 AI는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변화 신호를 포착한다. CES 현장에서 본 대부분의 솔루션은 ‘기기’가 아니라 ‘데이터’를 중심에 두고 있었고 사용자의 평소 상태를 이해하는 능력 자체가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었다. 기기는 점점 더 작고 일상적인 형태로 스며들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방대한 데이터가 클라우드에 축적되고 정교한 알고리즘이 이를 학습하며 개인의 건강 패턴을 구조화하고 있다.
개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데이터는 계속 축적·해석되고, 헬스케어는 더 이상 병원에서만 이뤄지는 행위가 아니라 생활 속 자연스러운 서비스가 됐다. 이러한 변화는 돌봄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돌봄의 순간이 일상에 스며든 만큼 돌봄은 기존 산업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 흐름으로 자리 잡았고 삼일 PwC가 정의한 Care 도메인의 핵심 특징인 예측성, 초개인화, 연속성이 기술 발전과 함께 현실화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Care 도메인의 확장은 개별 서비스의 발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단부터 생활 습관 개선, 만성질환 관리, 의료기관 연계까지 이어지는 전체 건강 여정이 하나의 생태계로 통합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는 Value in Motion 관점에서 돌봄이 단순한 의료 산업이 아닌 데이터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가치 풀(Value Pool)2)로 진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가치는 더 이상 특정 기관에 고정되지 않고 개인의 삶을 따라 이동하며 재배치되고 있다.
1) 메가트렌드의 충돌로 산업이 재편되며 건설·인프라, 돌봄·건강관리, 식품·농업, 에너지, 제조, 이동·물류, 연결·컴퓨팅, 금융·보험, 공공·행정 서비스의 9개 새로운 성장 도메인이 등장함
2) 기술·소비자 행동·기후변화 등 구조적 변화 속에서 가치가 새롭게 축적되고 이동하는 ‘미래 수익성과 성장성이 높은 가치 지대’를 의미함
데이터 생태계를 노리는
IT 기업들의 움직임
이 같은 돌봄의 확장은 글로벌 IT 기업들의 헬스케어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헬스케어는 전통적으로 규제·책임·진입장벽이 높아 비(非)의료 기업에 쉽지 않은 영역이었지만 데이터 기반 기술의 비약적 성장은 IT 기업의 강점을 헬스케어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하루에도 수십 번 사용자와 접점을 만들고 장기적인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는 산업은 흔치 않다. 이런 구조는 예측 모델의 성능을 높이는 데 최적이며 이는 다시 플랫폼 충성도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든다. 그동안 IT 기업들이 온라인 서비스에서 다져온 전략적 자산이 그대로 헬스케어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사용자 접점, 데이터 축적, AI 분석 역량이 하나의 통합 경쟁력으로 작동하는 산업이 바로 헬스케어다.
헬스케어는 플랫폼 록인과 구독 기반 수익 모델, 데이터 네트워크 효과가 가장 강하게 작동할 수 있는 산업이다. CES에서 만난 여러 기업의 전략도 이 점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만성질환 관리용 AI 웨어러블은 ‘측정 장치’가 아니라 ‘데이터 기업’의 수익 모델로 진화하고 있었고 인지기능 저하를 생활 속 행동 패턴에서 감지하는 서비스는 단순한 모니터링을 넘어선 예측형 헬스케어로 확장되고 있었다. 식습관·수면·운동을 자동 설계하는 플랫폼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의 건강 여정을 ‘맞춤형 루틴’으로 구성해준다. 의료와 웰니스의 경계는 이미 흐릿해졌으며 IT 기업은 사용자의 라이프로그 전반을 통합해 종합 건강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기 판매는 출발점일 뿐 핵심 가치는 축적된 데이터와 이를 해석하는 알고리즘에서 발생한다.
헬스테크 스타트업들의 수익 구조도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으로는 디바이스 판매나 단일 솔루션 구독에 의존했지만 현재는 데이터 기반 진단·예측 모델 고도화, 보험·기업 건강관리·의료기관으로 확장, 장기적 서비스 매출 확보라는 구조로 전환 중이다. 이는 의료기기를 넘어 의료생태계 전체와 연결되는 플랫폼 전략이며 IT 기업들이 이미 잘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세계적 고령화, 만성질환 증가, 의료 인력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는 헬스케어의 디지털 전환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글로벌 IT 기업들, 특히 데이터·AI·클라우드 역량을 갖춘 기업은 헬스케어를 더 이상 실험 영역으로 보지 않는다. 이미 주요 사업 포트폴리오의 전면에 배치하고 있으며 각국 규제 환경을 고려해 병원·보험·약국·웰니스 플랫폼과의 전략적 제휴를 적극 확대하고 있다.
결국 헬스케어는 IT 기업에 ‘다음 전장’이 아니라 이미 현재진행형의 핵심 무대다. 승부를 가르는 요소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건강이라는 근본적 가치에 얼마나 정교하게 접근하고, 얼마나 매끄럽게 일상에 스며들며, 얼마나 빠르게 데이터 기반 신뢰를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앞으로 헬스테크 시장의 주도권은 의료 전문성, 데이터 해석 능력, 사용자 경험 설계, 글로벌 규제 대응력을 함께 갖춘 기업에 돌아갈 것이다. 산업의 경계가 제거된 지금, 헬스케어는 모든 기업에 열린 기회이자 동시에 새로운 경쟁의 장이다.
Profile. 김기록
- 삼일 PwC 글로벌 IPO 리더
- 삼일 PwC 유니콘지원센터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