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률
영국의 10배
英처럼 자율규제가 답
글. 배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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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을 강화하고 규정을 늘리는 방식만으로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을까. 산업구조가 복잡해진 오늘날, 모든 위험을 법조문으로 통제하는 접근은 분명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를 따지는 데 머물 것이 아니라 ‘어떻게 위험을 줄일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명령과 통제 중심 산업안전 체계의
한계
2023년 한국 산재사고 사망만인율은 0.39‱에 이른다. 한 해 동안 근로자 1만 명 중 0.39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는 의미이다. 한국은 국제노동기구(ILO) 산재 통계 제공 76개 국가 중에서 상위 20위를 기록하고 있다. 산재사고 사망만인율이 가장 낮은 영국은 0.04‱에 불과하며 일본도 0.13‱에 불과하다. 한국의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를 고려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과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최근의 근로감독관 2,000명 증원 계획 발표 등 정부는 잇달아 강력한 통제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런 방식으로 산업재해가 과연 줄어들 것인가?
현재 한국의 산업안전 체계는 정부 주도의 강력한 ‘명령과 통제’를 근간으로 한다. 수많은 법령에서 세부 규정을 나열하고 어기면 엄벌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정부가 모든 현장의 위험 요소를 속속들이 규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오히려 규제가 복잡해질수록 현장에서는 ‘규제의 역설’이 발생한다. 기업들은 사고를 막기보다 처벌을 피하기 위한 방어적 서류작업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법을 다 지키다가는 진짜 일을 할 수 없다’는 현장의 비명이 단순한 엄살로 들리지 않는다.
영국 로벤스보고서와
자율 규제의 전환 모델
1970년대 영국의 대전환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영국 역시 지금의 한국처럼 규제가 거미줄 같았다. 그런데 석탄 폐기물이 초등학교와 주택을 덮쳐 144명의 목숨을 앗아간 ‘애버판(Aberfan) 참사’를 겪으며 시스템의 한계를 절감했다. 영국 정부는 1972년 <로벤스보고서>를 발간하며 산업안전 보호 체계의 패러다임 대전환을 선언했다. ‘재해의 책임은 위험을 만드는 자와 위험 속에 일하는 자 모두에게 있다’며 국가 주도가 아닌 자율 규제를 강조한 것이 핵심이었다. 영국은 세부 규정 대신 원칙만을 선언하고 구체적인 실행지침은 노·사·정이 현장에서 함께 만들도록 했다. 그 결과 1979년 0.31‱였던 영국의 사망만인율은 2023년 0.04‱로 급감했다. 최소한의 법 준수에 급급하던 기업들이 실질적인 안전을 고민하기 시작한 결과다.
영국의 사례를 참고해 우리도 변화해야 한다. 우선 산재한 개별 법령부터 손질할 필요가 있다. 주체별 역할을 세세하게 나열한 현행 법체계를 원칙과 성과 중심의 단일 법률로 통합하고 구체적인 실행지침은 사용자와 근로자, 정부가 현장에서 함께 설계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처벌에서 예방으로,
산업안전의 역할 재정립
결국 산업안전은 화려한 법문이 아니라 현장의 실효성 있는 실천으로 완성된다. 이제는 ‘더 많은 법’을 쌓아 올리기보다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관심을 집중해야 할 때다. 정부는 처벌에 몰두하는 감시자에서 예방을 지원하는 조력자로, 사용자와 근로자는 규제의 대상에서 안전의 주체로 거듭나는 역할의 재정립이 시급하다. 개별 기업이 자율 규제의 성공 경험을 사회적 자산으로 쌓을 때, 한국의 산업안전 체계는 비로소 ‘0.39’라는 비극적인 숫자에서 벗어나 안전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 해당 칼럼은 필자 개인 의견이며 IBK기업은행, IBK경제연구소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합니다.
Profile. 배관표
- 충남대학교 국가정책대학원 교수
- 한국규제학회 홍보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