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현장서 쓸모 입증
‘행동하는 AI’ 시대로
글. 최형욱
사진. CTA
CES 2026은 AI에 대한 인식과 역할이 근본적으로 전환되는 분기점이었다. 독립된 기술 카테고리가 아니었고 ‘AI를 사용한다’는 말 자체는 차별화 요소가 되지 못했다. 대신 모든 산업이 AI를 전제로 삼은 채 그 위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가치를 구현할 것인지를 묻고 있었다. CES 2026은 AI가 ‘보여주기식 옵션’에서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이동했음을 분명히 입증한 자리였다.
생성형 AI는 기본, 실행형 AI의 부상
최근까지 가장 주목받았던 생성형 AI 중심의 담론은 CES 2026에서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텍스트를 만들고 이미지를 생성하는 AI가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이를 새롭다고 느끼지 않기 시작했다. CES 2026에서 주목받은 것은 행동하는 AI, 즉 실행형 AI였다. AI가 판단하고 그 판단이 로봇, 차량, 공정, 공간을 통해 실제 세계에서 실행되는 구조가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는 단순한 기술 진화가 아니다. 생성형 AI가 지식 노동을 자동화했다면 실행형 AI는 물리적 노동과 운영을 자동화한다. CES 2026에서 로보틱스, 스마트 제조, 자율주행, 스마트 인프라가 AI 트렌드의 중심에 선 이유다.
AI의 경쟁력은 ‘얼마나 똑똑한가’를 넘어 ‘얼마나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행동하는가’로 진화하고 있다. 선택받은 AI의 공통점은 화려한 지능이 아니라 업무를 끝까지 수행하는 흐름을 갖췄다는 점이다. 사용자 경험은 단순하고 현장 도입의 진입장벽을 낮춰 빠르고 안정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PLAUD는 ‘화면 없는 웨어러블 AI’로 회의와 통화 기록을 자동 요약하며 구독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다. 젠시스튜디오의 스튜디오랩은 상세 페이지 제작을 ‘이미지 생성–카피–레이아웃 설계’까지 하나로 묶어 마케팅 실무 공정 자체를 몇 분 단위로 단축시키는 ‘에이전틱 워크플로’를 전면에 내세웠다. Savvy는 카메라가 아닌 3D Depth 기반 비식별 데이터로 화장실, 병실 등 민감 공간에서 낙상과 이상 행동을 감지한다는 명확한 가치 제안을 보여줬다.
피지컬 AI(Physical AI):
AI의 다음 전장은 현실 세계
CES 2026의 가장 강력한 키워드는 단연 피지컬 AI였다. AI는 더 이상 말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센서, 액추에이터, 제어 시스템과 결합해 현실을 인식하고 행동하는 존재로 진화했다. 전시장에는 휴머노이드 로봇, 물류 로봇, 가정용 로봇, 산업 자동화 장비가 넘쳐 났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관심의 기준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곡예 동작이나 퍼포먼스를 강조하는 로봇보다 실제로 어떤 작업을 대체하는지, 어떻게 배치되고 운용되는지, 유지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가 핵심 관심사가 됐다. 이는 AI가 볼거리를 넘어 노동력과 인프라의 대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로봇 및 무인 시스템 관련 제품이 대폭 증가한 것은 시장이 실제 현장에 배치할 수 있는 기술을 본격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CES 2026에서 선택받은 로봇들은 ‘사람처럼 걷는다’가 아니라 어떤 업무를 대체하고, 어떤 효율 개선을 만드는가를 명확히 제시했다.
Robotera, Noetix Robotics, MagicLab, AGIBOT, UniX AI, Fourier 등은 실내 업무, 서비스, 물류 환경에서의 적용 시나리오를 전면에 내세웠다. Deep Robotics, LimX, PNDbotics 등은 거친 지형, 플랜트, 광산 등 외부 인프라에 특화된 스페셜 리스트 로봇을 선보였고 KEENON은 호텔, 공항, 리조트에 최적화된 서비스 로봇을 전시했다. 이와 함께 로봇 핸드, 촉각 센서, 엑소스켈레톤 분야의 Daimon, Sharpa, ULS, 중국 국가 차원의 휴머노이드 전략 허브인 Beijing Humanoid Robot Innovation Center까지 다양한 기술이 등장했다. 로봇의 경쟁력은 이제 하드웨어 스펙을 넘어 도입, 운영, 안전, 통합을 포함한 실제 현장 가치로 확장되고 있다.
모델 경쟁을 넘어 풀 스택 AI의 시대
CES 2026에서 가장 분명해진 변화는 AI 경쟁의 축이 모델에서 운영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어떤 LLM을 쓰느냐보다 AI를 얼마나 오래, 멈추지 않고, 비용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가 핵심 경쟁력이 됐다. 이로 인해 알고리즘뿐 아니라 컴퓨팅 자원, 네트워크, 데이터센터, 전력, 냉각, 보안, 운영 자동화까지 포함하는 풀 스택 AI가 핵심 트렌드로 부상했다.
AI 인프라, 에너지, 데이터센터 기술이 전면에 등장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AI의 병목은 더 이상 모델이 아니라 전력, 열, 공간이라는 물리적 제약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AI 경쟁은 소프트웨어 전쟁이 아니다.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능력의 경쟁이다. 리스크를 낮추고, 운영 비용을 줄이며, 확장 가능한 표준 위에 올라탔는지가 AI 선택의 기준이 되고 있다.
반복적으로 등장한 또 하나의 키워드는 하이브리드 AI였다. 모든 판단을 클라우드에서 처리하는 구조는 비용, 지연, 보안 측면에서 한계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AI는 클라우드, 에지, 온디바이스를 목적에 따라 분산 배치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돌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조합해 최적화하느냐이다. 즉각적인 반응이 필요한 판단은 디바이스나 에지에서, 대규모 학습과 최적화는 클라우드에서 수행하는 구조가 표준이 되고 있다. 이는 AI가 기술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 전략의 문제가 됐음을 의미한다.
AI의 개인화:
데이터 신뢰와 실행력의 차이
소비자 영역에서도 AI의 방향은 분명했다. 더 많은 기능보다 개인화를 위한 신뢰와 프라이버시가 핵심 경쟁 요소로 떠올랐다. 비식별 센싱, 온디바이스 처리, 사용자 통제권 강화가 차별화 포인트로 선택되기 시작했다. 이는 AI가 단순한 편의 기능을 넘어 생활 인프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가 일상에 깊이 들어올수록 기술 성능보다 사회적 수용성과 신뢰 구조가 더 중요해진다.
AI 기반 개인 맞춤 샤워/웰니스 경험을 제시한 세라젬의 밸런스 AI 리쥬베네이션 샤워 시스템, 혈액 채혈 없이 땀으로 젖산을 추적하는 포인트핏의 비침습 연속 측정 스웨트 패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개인화의 승부는 알고리즘 이전에 데이터 수집에 대한 신뢰와 제조, 전달의 실행력에서 갈린다.
CES 2026이 전 세계 기업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AI는 더 이상 ‘도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AI를 전제로 한 세계에서 이제는 무엇을 설계하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다. 보여주는 AI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살아남는 AI는 실행되고 운영되며 책임질 수 있는 AI뿐이다. CES 2026은 그 냉정한 기준이 시작됐음을, AI를 대하는 산업과 사회의 기준이 바뀌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Profile. 최형욱
- 퓨처디자이너스 대표
- Innovation Cataly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