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026 Vol.251

BRAND LEADER

실패한 회사의 유산을
빛나는 보석으로 바꾸다

글.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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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랙(Slack)은 현재 전 세계 기업들이 사용하는 업무용 메신저의 대명사가 됐지만 그 시작은 실패로부터 비롯했다. ‘글리치(Glitch)’라 불리는 온라인 게임이 실패한 후 유일하게 남은 유산이었던 내부 개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그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게임은 실패했지만
일하는 방식은 성공적이었다

2012년 11월, 캐나다 밴쿠버의 쌀쌀한 아침. 온라인 게임 스타트업 타이니스펙(Tiny Speck)의 창업자 스튜어트 버터필드(Stewart Butterfield)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야심 차게 출시한 온라인 게임 ‘글리치’ 때문이었다. 평단과 소수 마니아의 찬사를 받고 있었지만 이 게임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기에는 기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한계가 명확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로부터 1,500만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막대한 투자에도 결과는 불투명했다. 투자금 중 약 600만 달러가 남아 있었지만 결국 그는 팀원들에게 “우리는 게임을 닫아야 한다”는 뼈아픈 결정을 통보한다.
하지만 그는 청산 절차 대신 새로운 선택을 했다. 그 실패의 폐허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샌프란시스코와 밴쿠버, 뉴욕에 흩어져 일하던 팀원들이 게임 개발을 위해 내부적으로 사용하던 커뮤니케이션 도구였다. 그들은 이메일 대신 이 채팅 도구를 통해 대화하고, 코드를 공유하고, 버그를 수정해왔다. 버터필드는 깨달았다. ‘게임은 실패했지만 우리가 일하는 방식은 성공적이었다’는 걸. 그는 남은 투자금을 반환하는 대신 이 내부 도구를 다듬어 세상에 내놓기로 결심한다. 이것이 바로 슬랙의 시작이다.



슬랙의 핵심인 채널은 사람들이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주제에 대해 논의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다.(ⓒ세일즈포스)





강물처럼 흐르는 ‘스트리밍’ 업무 혁명

슬랙은 ‘Searchable Log of All Conversation and Knowledge(모든 대화와 지식의 검색 가능한 로그)’의 약자로 이 이름에는 슬랙이 지향하는 철학이 담겨 있다. 기존 업무에 사용하던 이메일은 1 대 1 혹은 1 대 다수의 커뮤니케이션에 한정될 수밖에 없는 폐쇄적인 도구에 머물렀다. 하지만 슬랙은 업무를 ‘채널(Channel)’이라는 열린 광장으로 끌어냈다. 수신인과 참조인(CC)에 포함되지 않으면 정보의 흐름을 알 수 없는 이메일과 달리 슬랙의 채널은 누구나 들어와서 프로젝트의 맥락을 파악하고 지나간 대화 내역을 검색할 수 있었다. 보존된 정보들을 조직 내 누구나 접근하고 검색이 가능한 점은 정보의 민주화, 부서 간 소통, 업무의 연속성 등에 엄청난 효율을 가능하게 했다.
이것은 업무 방식의 혁명이었다. 그간 정적인 전달에 머물던 업무의 흐름은 슬랙을 통해 동적인 스트리밍(Streaming)으로 바뀌었다. 마치 타임라인을 보듯이 직원들은 업무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다가 필요한 순간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이 변화만으로 슬랙은 ‘이메일을 32% 줄이고 회의를 27% 줄인다’는 명성을 얻으며 실리콘밸리의 필수 도구로 자리 잡았다.



‘슬랙 투어 서울 2025’에서 세일즈포스코리아는 슬랙이 AI와 인간의 원활한 협업을 지원하는 ‘에이전틱 OS(Agentic OS)’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발표했다.(ⓒ세일즈포스)





유니콘을 넘어 ‘디지털 HQ’로

2014년 정식 출시된 슬랙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며 출시 8개월 만에 기업가치 10억 달러(약 1조 원)를 넘는 유니콘 기업이 됐다. 위협을 느낀 마이크로소프트가 팀즈(Teams)로 견제에 나섰지만 슬랙은 특유의 유연함과 방대한 외부 앱 연동(Integration) 기능을 무기로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했다. 2024년 기준 2,600개 이상의 공식 앱과 75만 개 이상의 커스텀 봇이 활동하는 생태계는 슬랙을 단순 채팅 앱이 아닌 업무용 소프트웨어의 허브로 만들었다.
2020년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가 재택근무로 전환됐을 때 슬랙은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세계 최대의 CRM 기업 세일즈포스(Salesforce)로부터 277억 달러(약 35조 원)에 인수된 것이다. 슬랙은 이제 흩어진 직원들을 연결하는 디지털 본부(Digital HQ)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게 됐다.
AI 시대를 맞아 슬랙은 또 다른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생성형 AI 기술을 접목해 사람이 아닌 AI 에이전트가 팀원으로 참여하는 시대를 연 것이다. 실패한 게임 회사의 유산으로 시작해 전 세계의 일하는 방식을 바꾼 슬랙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실패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실패 안에서도 성공한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말해주는 것일 테니 말이다.



Profile.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 <대중문화 트렌드>,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