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발표하고
인터뷰한 CEO
‘AI 클론’이었다
글. 김태권
AI 에이전트가 화제다. 시키는 일은 척척 해낸다. 하지만 일이 밀리기 시작하면 무엇을 시킬지 정하는 것조차 또 하나의 업무.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AI 클론’이다. 내가 할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나처럼 일하는 디지털 분신. 이제 CEO도, 자기 계발 코치도 자신만의 AI 분신을 만들어 일을 맡기는 시대가 됐다.
사람 대신 일하는 AI, 이제는 ‘분신’이다
손오공은 바쁘다. 밀려드는 일을 소화하려니 일손이 모자란다. 저팔계와 사오정을 믿고 일을 맡기기에도 불안하다. 나 대신 일해줄 또 다른 내가 필요하다. 그래서 분신술을 쓴다. 털을 한 움큼 뽑아 ‘후’ 하고 불어주면 가닥 하나하나가 내가 돼 내 일을 거든다. 각자 알아서 요괴를 물리친다.
최근 사람처럼 일하는 AI 에이전트가 화제다. AI가 나 대신 홈페이지에 들어가고, 나 대신 클릭하고 결제한다. 신기하고 편리한 세상이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에이전트에게 일을 시키는 것조차 번거롭다. 프롬프트를 주고 결과를 검증하는 일도 쌓이고 나면 만만치 않다. 요즘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바쁜 것도 사실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딜로이트(Deloitte)가 2025년 7월 발표한 「AI를 활용한 인재 개발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AI 도구를 사용하는 직원의 77%가 오히려 업무량이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에이전트 피로(Agent fatigue)’를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나의 분신, 나의 클론이다. AI 에이전트의 다음 단계는 AI 클론이 될 것이다. 각자 할 일을 내가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는 에이전트가 아니다. 내가 할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척척 처리하는 AI 클론이 눈길을 끈다. 손오공의 분신 같은 존재다. 내가 일일이 프롬프트를 넣지 않아도 나처럼 일하는 나의 복제라니, 솔깃하면서도 찜찜하다. AI 클론이 내 일을 거드는 세계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CEO AI’는 어디까지 진화할까
2024년 글로벌 커리어 네트워킹 서비스 링크트인(Linkedin) 공동 창업자 리드 호프먼(Reid Hoffman)은 자신을 본뜬 AI 클론 ‘REID AI’를 공개했다. 20년 치 글과 연설, 팟캐스트를 학습시켰다고 한다. 자기 자신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눈길을 끌었고 AI 클론은 청중과 질의응답 시간까지 가졌다고 한다.
2025년에는 화상회의 서비스로 유명한 줌(Zoom)의 창업자 겸 CEO 에릭 위안(Eric Yuan)의 AI 클론이 등장했다. 회사 실적 발표를 클론이 대신 맡았다. 나중에는 자신 대신 AI 클론을 화상회의에 내보낼 계획이라고도 했다.
2026년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커스터머스 뱅크(Customers Bank) CEO 샘 시두(Sam Sidhu)가 30분 동안 회사 실적을 발표한 뒤 “지금까지 발언한 사람은 사실 AI 클론”이라고 밝혔다. 오픈AI와 협업하고 AI가 코딩을 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고 하니, 제법 어울리는 깜짝쇼였달까.
이 사례들은 흥미롭다. 하지만 삐딱하게 보면 그저 보여주기 행사를 위한 ‘사장님 AI 아바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실망하기는 이르다. 현장에서 경영자의 AI 클론이 실제로 요긴하게 쓰이는 경우도 있다.
2024년과 2025년,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Klarna)의 CEO 세바스티안 시미아트코프스키(Sebastian Siemiatkowski)의 AI 아바타가 실적 발표를 맡았다. 여기까지는 ‘보여주기’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2025년, 이 회사 CMO 다비드 산드스트룀(David Sandström)은 자신의 AI 클론을 회사에 공개했다. 예산 삭감 문제로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자 ‘자기 대신 사과하는 AI 클론’을 만들어 항의 전화를 받게 한 것이다. 욕받이 분신이라니, 나도 하나쯤 갖고 싶다.
우버(Uber)는 ‘사장님 분신’을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회사다. 직원 수가 3만 명 수준이다 보니 CEO 다라 코스로샤히(Dara Khosrowshahi)를 직접 만나 발표할 기회가 흔치 않다. 그래서 일부 직원은 다라 코스로샤히의 AI 클론인 ‘Dara AI’를 만들었다. 공개 인터뷰와 의사결정 패턴 등을 학습시킨 것으로 보인다. 직원들은 CEO 클론 앞에서 발표 리허설을 하고 예상 질문과 반박도 미리 받는다. 그렇게 발표 내용을 다듬는다. “내가 받을 때쯤이면 이미 발표 자료가 아름답게 다듬어져 있더라.” 다라 코스로샤히가 2026년 2월 팟캐스트에서 한 말이다.
2026년 4월에는 저커버그의 클론 소식도 눈길을 끌었다. 페이스북을 만든 메타(Meta)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의 AI 클론을 회사 차원에서 직접 개발한다는 이야기였다. 저커버그 본인도 AI를 직접 학습시키며 클론 제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메타 직원들이 ‘사장님 분신’과 대화하며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도록 하려는 목적이라고 한다.
손오공의 털은 누가 쥐고 있나
꼭 사장님만이랴. 일하는 사람 누구나 자기 분신을 가지는 시대가 온다. 2024년 11월 스탠퍼드대 등의 연구 결과는 흥미롭다. 2시간 인터뷰만으로 한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부분 복제할 수 있다고 한다. 클론과 ‘본체’는 각종 검사에서 66~85% 수준의 일치된 응답을 보였다. 이 정도면 나 대신 결정을 맡길 수 있지 않을까?
2025년에는 데이팅 코치 매슈 허시(Matthew Hussey)와 동기 부여 코치 토니 로빈스(Tony Robbins) 등이 자기 클론을 시장에 내놨다. 한 달에 수십 달러를 내면 클론한테
24시간 코칭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이용자가 많다고 한다.
“일반 직원도 자기 트윈을 회의에 보내는 시대가 곧 온다.” 줌의 CEO 에릭 위안이 2025년 10월에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 클론이 돌아다니며 나 대신 일을 하다니 반갑기도 하지만 어딘가 으스스하기도 하다. “AI 모델이 실시간으로 학습하게 되는 순간, 우리 모두가 대체 가능해질 것.” 우버의 CEO 다라 코스로샤히가 웃으며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웃으며 할 이야기였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2025년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메타는 미국 내 직원들의 회사 컴퓨터마다 추적 소프트웨어를 설치했다고 한다. 마우스 움직임과 클릭, 키보드 입력 패턴 전체를 데이터로 저장했다는 것. 사무직 직원이 매일 어떻게 클릭하고, 어떤 단축키를 사용하는지 그대로 따라 하는 AI 에이전트를 만들기 위해서라나.
2026년 4월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는 중국 ‘콜리그 스킬(Colleague Skill)’ 프로젝트 사례가 실렸다. 동료의 채팅 기록과 프로필을 입력하면 ‘말투의 작은 버릇과 구두점 습관까지’ 복제해 클론으로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일부 직원의 반응도 흥미롭다. 자기 복제를 방해하는 사보타주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앞으로 겪게 될 미래의 상황일지도 모른다.
내가 원해서 나를 복제하면 ‘분신술’이지만 남이 나를 복제하면 작업장 감시와 대체라는 뜻일까. 분신을 부리는 자가 손오공인 경우와 남이 손오공의 털을 뜯어다 분신을 만드는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말년 <서유기> 속 손오공은 너무 많은 털을 뽑아 지나치게 많은 클론을 만들다가 탈모로 고생한다. 곧 다가올 AI 클론의 시대, 과연 안심해도 될까?
Profile. 김태권
- 만화가 겸 저술사
- <인공지능과 살아남을 준비> 저자
- AI 인프라 프로바이더 기업 정원엔시스 이사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