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026 Vol.255

NOW TREND

“비싸도
내 취향이면 산다”
가취비 소비의 시대

글. 강진우

평소 합리적 소비를 지향하다가도 취향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발견하면 감당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 스몰 럭셔리를 즐기는 ‘가취비’ 트렌드가 퍼지고 있다. 경제적 불확실성과 불황 속에서도 개인의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젊은 세대의 이유 있는 소비 전략이다.

소비자의 개성을 투영한
‘작은 사치’

가취비는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와 ‘취향’을 합친 신조어로 자신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 행태다. 일상에서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적 만족)’나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지만 취향과 잘 맞는 소비 대상을 만나면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여기에서 핵심 포인트는 ‘지출 능력’이다. 취향에 따라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고 즐기되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선은 지키는 ‘작은 사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가취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타인이 보기에 비효율적이고 비싸더라도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면서 빚을 지지 않을 정도의 제품이나 서비스는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소비한다. 이런 측면에서 가취비는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나 신념을 바탕으로 소비에 나서는 ‘가치 소비’, 적은 비용으로 심리적 만족감을 극대화하려는 소비 형태인 ‘스몰 럭셔리(Small Luxury)’와 유사하다.
하지만 가치 소비는 도덕적‧사회적 신념에, 스몰 럭셔리는 불황 속 보상 소비에 방점이 찍혀 있는 반면 가취비는 자신의 개성을 소비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둘과는 미묘하게 다르다. 요컨대 가취비는 가성비와 가심비를 넘어 새롭게 탄생한, 경제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최대한의 개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청년층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다.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한
세밀화된 취향

기업들이 MZ세대의 가취비 트렌드를 반영한 제품과 서비스를 속속 내놓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홈 기업 아카라라이프는 최신 기술에 민감하고 집을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로 바꾸길 원하는 청년층을 겨냥해 스마트 조명을 출시했다.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색온도를 1도 단위로 정밀 제어할 수 있으며 상황에 따른 여러 모드를 미리 설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 모드’를 설정하면 조명 밝기가 10%로 낮아지고, 설정된 재택근무 시간에는 자동으로 집중력을 높이는 주백색 조명을 켜 주는 식이다. 이처럼 머무는 공간을 언제든 다양한 무드로 바꿀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이들의 조명은 개당 10만 원이 넘는 가격에도 많은 소비자가 선택한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은 작년 8월 브랜드 탄생 후 17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화장품을 선보였다. 55개 색상의 립스틱, 10가지 컬러의 립밤 등을 내놓음으로써 루이비통을 좋아하지만 제품을 구매하기에는 경제적 여력이 비교적 부족한 청년층 잡기에 나선 것이다. 루이비통은 이 같은 움직임의 일환으로 작년 9월 서울 청담동 루이비통 메종 서울 내에 상설 레스토랑 ‘르 카페 루이비통’을 열었다. 루이비통의 감성을 가득 담은 각종 음료와 더불어 만두피에 로고를 새긴 ‘비프 만두’ 등을 판매하는데 고급스럽고 독특한 공간과 명품 브랜드 특유의 감성을 만끽할 수 있다 보니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몇 주 전에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비싼 명품 대신, 매일 손이 닿는 물건에 취향을 담는 시대. 가취비는 일상을 업그레이드하는 가장 사적인 사치다.





경제적 불안 위에 피어난
개성적 소비

수건‧세제‧소금 등 일상용품을 프리미엄 제품으로 채우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영국 에섹스 카운티의 말돈 마을에서 생산되는 프리미엄 소금인 말돈 소금의 판매량이 급증하는가 하면 갓 수확한 올리브에서 짜낸 햇올리브유를 찾는 손길이 부쩍 늘었다.
이 같은 소비 변화상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6년 2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명품 브랜드의 성장률이 전년 동월 대비 한 자릿수에 머문 데 비해 프리미엄 식재료를 판매하는 백화점의 식품 매출은 25.6%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주요 점포의 리빙관을 ‘럭셔리 리빙’ 중심으로 재편하며 고가 세제, 호텔식 타월 등 프리미엄 생활용품 매대 비중을 전년 대비 15% 이상 확대했으며 이를 통해 의미 있는 매출 신장을 달성하고 있다. 이 외에도 프랜차이즈 기업들의 스타 셰프 영입 및 고가 원재료 도입, 특급 호텔들의 자체 호텔용품 브랜드 론칭 및 제품 출시 등 가취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한 움직임은 유통업계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가취비 트렌드의 확산은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가치와 신념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제적 불확실성과 어려움 속에서도 일상의 만족을 극대화하려는 청년층의 욕구와 움직임이 낳은 산물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무의미한 사치로 보일 수 있는 가취비 트렌드를 따가운 눈총만으로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Profile. 강진우

- 문화칼럼니스트
- 국립극장, 산림조합 등 문화·트렌드 전문 필진
- <칼럼니스트로 먹고 살기>, <선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