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 ‘자동 쇼핑’
포털·이커머스
떨고 있다
글. 김현지
구글, 네이버, 에지 같은 기존 브라우저가 정보를 보여주는 ‘창구’라면 AI 에이전트 브라우저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리인’이다. 브라우저가 ‘창구’에서 ‘대리인’으로 바뀌는 순간, 사용자와 서비스 사이의 관계는 달라지고 웹 비즈니스 구조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쇼핑 플랫폼의 UI·UX와 광고 모델 역시 AI 에이전트 앞에서는 힘을 잃을 수 있다.
‘검색 도구’에서 ‘디지털 대리인’으로
크롬(구글), 에지(마이크로소프트), 네이버가 90% 이상을 점유하던 웹브라우저 시장에 지각변동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건 지난해 하반기다. 퍼플렉시티의 코멧(Comet), 오픈AI의 아틀라스(Atlas) 같은 신생 브라우저들이 기존 강자들의 아성에 잇달아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들이 노리는 건 단순한 점유율 확대가 아니다. 브라우저의 역할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핵심 무기는 AI 에이전트. 지금까지 정보를 검색하는 수동적 도구에 머물렀던 브라우저를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디지털 대리인’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 이들의 구상이다.
#검색창 대신 말 한마디로 지시
기존 브라우저를 쓸 때 우리는 직접 검색어를 입력해 링크를 클릭하고 필요한 양식(form)을 채웠다. 브라우저는 그 과정에서 창을 열어주는 역할에 그쳤다. AI 에이전트 브라우저는 이 방식을 뒤집는다.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문장으로 전달하면 브라우저에 내장된 AI가 의도를 파악해 필요한 작업을 알아서 처리한다.
가장 직관적인 예가 쇼핑이다.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살 때 기존 브라우저에서는 검색 후 리뷰 사이트를 훑고, 여러 쇼핑 앱을 오가며 가격과 배송 조건을 비교한 뒤 결제 정보를 직접 입력해야 했다. 반면 에이전트 브라우저에서는 “20만 원 이하 노이즈캔슬링 무선 이어폰 찾아 줘” 한마디면 충분하다. AI가 예산과 조건을 파악해 여러 쇼핑 사이트를 직접 돌아다니며 상품을 수집하고 비교표까지 내놓는다.
에이전트 브라우저의 작동 방식을 항공권 검색 과정을 통해 살펴보면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코멧 브라우저에 “다음 주 월요일 오전 서울발 도쿄행 가장 저렴한 왕복 항공편 찾아 줘. 수요일 오후 귀국, 수하물 1개 포함 조건으로 주요 예약 사이트 몇 곳 비교해 줘”라고 입력하면 AI는 일정과 조건을 정리한 뒤 항공권 예약 사이트에 직접 접속해 결과를 표로 만들어 보여준다. 작업에 걸리는 시간은 약 3분. 그 사이 사용자는 다른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유료 플랜을 이용하면 항공권 결제까지 에이전트에 넘길 수 있다. 코멧의 영상 요약 기능도 눈여겨볼 만하다. 유튜브에서 긴 강의나 다큐멘터리를 틀어놓고 “요약해 줘”라고 하면 핵심 내용을 섹션별로 정리해 준다. 영어는 물론 스페인어와 일본어, 중국어도 지원한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물론 지금의 AI 에이전트 브라우저가 만능은 아니다. 쇼핑 실행 기능은 특히 불완전한 면이 있다. 쇼핑 페이지가 화면에 완전히 표시되지 않으면 ‘장바구니 담기’ 버튼처럼 핵심 요소가 에이전트의 시야 밖으로 밀려나고 AI는 보이지 않는 요소를 클릭할 수 없으므로 작업이 그대로 중단된다. 쿠키 동의나 회원 가입 유도 팝업창이 화면을 가릴 때도 마찬가지다. 사이트마다 ‘담기’, ‘Cart’, ‘쇼핑백’ 등 표현이 제각각이거나 텍스트 없이 아이콘만 있는 경우 AI가 해당 기능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항공권 검색에서도 빈틈이 드러났다. ‘수하물 1개’ 조건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수동으로 다시 입력했더니 결과가 달라진 사례가 있었다. 편의성은 높지만 중요한 조건이 빠졌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결과를 직접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한 이유다. 또 오픈AI의 아틀라스는 현재 맥(Mac) 버전만 나와 있고 윈도우 버전은 출시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처럼 아직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가 남아 있다는 점에서 에이전트 브라우저는 지금, 혁신의 초입에 서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플랫폼 비즈니스를 뒤흔드는 파장
AI 에이전트 브라우저의 등장은 개인 사용자에게는 반가운 변화지만 기존 플랫폼 사업자에게는 근본적인 위협이다. 쇼핑 플랫폼들이 수십 년간 공들여 온 것이 무엇인지 떠올려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실감된다. 사용자가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이 구매하도록 배너 위치, 상품 노출 순서, 버튼 색깔, 리뷰 배치까지 심리를 자극하도록 정교하게 설계해 온 UI·UX 노하우가 AI 에이전트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에이전트는 광고 배너를 그냥 지나치고, 추천 상품에 흔들리지 않으며, 사용자가 설정한 조건에 맞는 것만 골라낸다. 광고 수익 모델도 흔들린다. 네이버 쇼핑이나 쿠팡 같은 플랫폼은 판매 수수료 외에 검색 상단 노출 광고비가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에이전트가 광고 순위를 무시하고 조건만 보고 상품을 선택한다면 브랜드 입장에서는 광고를 집행할 이유가 사라진다. 결국 방문자 수와 클릭 수를 기반으로 광고를 유치해 온 포털·이커머스·미디어 전반이 수익 기반 자체를 잃을 수 있다. 시장에는 이미 긴장감이 감돈다. 아마존은 올해 1월 코멧의 자동화 쇼핑 기능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했다. AI 에이전트 브라우저 기술을 겨냥한 첫 번째 법적 대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마존은 소송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자체 AI 쇼핑 에이전트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외부 에이전트에 시장을 잠식당하기 전에 자사 에이전트로 고객을 선점하겠다는 계산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식당·숙박업소·소규모 쇼핑몰 자영업자들이 “챗봇이 답변에 우리 업소를 넣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위기감 속에 분주하게 대응책을 찾아 나서고 있다. AI 에이전트의 확산은 브라우저 바깥에서도 진행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가 에이전틱(Agentic) AI 기능을 강화한 갤럭시 S26을 선보였고 카카오톡 메신저에도 에이전트 기능이 탑재됐다. 이런 흐름은 사람들이 브라우저를 대하는 방식의 변화를 한층 빠르게 밀어붙일 것이다. 웹이 인쇄 매체를 흔들었고 모바일이 PC를 밀어냈듯이 AI 에이전트는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디지털 비즈니스의 문법을 통째로 다시 쓰고 있다. 이번에도 변화를 먼저 읽고 움직이는 쪽이 살아남는다.
Profile. 김현지
-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 < AI 에이전트 개발 완벽 입문(위키북스, 4월)>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