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도 못넘은
자율주행 벽
6단계 중 어디까지 왔나
글. 김필수
운전석 없는 자율주행셔틀 ‘청계A01’이
서울 중구 청계천 일대를 주행하고 있다.
자율주행차는 미래 산업의 핵심 기술로 꼽히며 글로벌 경쟁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현재 기술 수준은 여전히 제한적인 환경에 머물러 있고 완전한 자율주행까지는 기술 안정성과 제도·윤리 문제 해결이 함께 요구된다. 자율주행의 현주소와 남은 과제를 짚어본다.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도 쉽게 못 가진 기술
자율주행은 미래 모빌리티의 주도권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실질적인 자율주행차가 등장하면 물류 혁명이 일어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은 물론 일자리의 대변혁까지 모든 분야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을 필두로 각국이 자율주행 기술 확보에 사활을 거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파급력을 고려한 결과다.
자율주행 기술은 인류가 개발한 각종 과학기술의 융합이라 할 만큼 난도가 극히 높은 분야다. 카메라·라이다 센서·레이더 센서 등을 통한 단거리 정보 수집을 기반으로 200m 이상의 원거리 정보를 실시간으로 오류 없이 전달할 수 있는 5G 이상의 통신 기술, C-ITS 지능형 교통 시스템 정보, 고해상도 GPS 정보가 필요하다. 여기에 이를 융합적으로 해석해 실시간으로 결과를 도출하는 차별화된 알고리즘, 방대한 빅데이터, 최적화된 인공지능까지 더해져야 하며 반도체 기반의 융합 하드웨어는 기본 전제에 해당한다. 이처럼 진입 장벽이 높은 분야인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애플은 약 10년 전부터 자율주행차 ‘애플카’ 개발에 뛰어들었는데 이는 자율주행이 글로벌 비즈니스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핵심 요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000명 이상의 연구 인력과 천문학적인 비용을 10년 넘게 투입했음에도 목표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서 결국 개발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투자 규모에 비해 실질적인 자율주행 단계인 레벨4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주된 이유였다. 다만 이는 완전한 포기라기보다 인공지능 폰 등 당면 과제에 집중하기 위한 일시 중단으로 보이며 여건이 개선되면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완전한 자율주행차의 실현까지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6단계로 나뉜 자율주행,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나
자율주행 기술은 미국자동차공학회(SAE)가 정의한 레벨0부터 레벨5까지 총 6단계로 구분된다. 현재 최고 수준은 정해진 구간과 조건 내에서 레벨4에 준하는 운행이 가능한 단계이나 실질적으로는 레벨3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면도로나 스쿨존, 복잡한 교차로 등 다양한 실제 도로 환경에서 사고 없이 주행할 수 있는 진정한 레벨4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애플카 개발 중단 역시 투자 대비 레벨4 달성이 요원하다는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각 단계를 살펴보면 레벨0은 운전자가 모든 것을 직접 조작하는 단계다.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이나 차선 이탈 경보 장치처럼 특정 기능만 보조하는 수준은 레벨1, 현재 고급 차량에 주로 탑재된 ADAS(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는 레벨2에 해당한다. 레벨3는 미국과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운행 중인 로보택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레벨4부터가 실질적인 자율주행의 시작으로 운전자의 탑승 여부와 관계없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으며 비상 상황에서만 운전자가 개입하는 거의 완전한 자율주행 단계다. 레벨5는 인간의 개입이 전혀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으로 아직은 이상에 가까운 단계다. 결국 현재의 레벨3를 누가, 얼마나 빠르게 레벨4로 끌어올리느냐가 자율주행 경쟁의 핵심이다.
현재 자율주행 기술 개발 현장에서는 실제 기술 수준과 이를 바라보는 인식 사이의 간극이 적지 않다. 기술을 적용하는 기업이나 지자체가 자사 기술의 우수성을 부각하기 위해 레벨 수준을 실제보다 높여 홍보하는 경향이 보편화돼 있기 때문이다. 특정 도로 조건이나 시간대를 한정해 놓고도 레벨4~5 수준이라고 주장하며 기술 주도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보행자나 차량이 드문 한적한 고속도로나 간선도로에서의 성능을 내세우며 완성도를 과시하는 사례도 흔하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서만 작동하는 자율주행은 악조건이 더해지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실제로 운행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진정한 레벨4는 어떠한 조건에서도 안전한 주행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면도로나 스쿨존은 물론 복잡한 교차로에서 보행자·자전거·오토바이 등 다양한 이동 수단이 뒤엉키는 상황, 나아가 무단횡단처럼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황에서도 냉정하고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폭우나 폭설 같은 극한 기상 조건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최적의 안전 운행을 유지하는 것 역시 필수 요건이다. 결국 미국이나 중국의 대도시에서처럼 온갖 악조건을 배제한 채 운행한다면 그것은 레벨4가 아니라 레벨3에 불과하다.
수백만 ㎞ 무사고,
그 데이터를 믿을 수 있는가
빅데이터의 질과 다양성 역시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의 핵심 변수다. 스쿨존, 출근 시간대의 복잡한 교차로, 폭우 같은 극한 환경 등 난도 높은 조건이 배제된 채 수집된 빅데이터는 학습을 통한 자율주행 성능 향상에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에서의 경로 판단, 속도 조절, 우회로 선택 등에서 치명적인 결함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데이터 수집 환경 자체의 왜곡에도 있다. 자율주행 택시나 시험 차량은 지붕 위의 라이다 센서와 대형 안내 문구 덕분에 멀리서도 쉽게 식별된다. 이를 인식한 주변 운전자들은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주행하게 되고, 그 결과 수집되는 빅데이터는 일반 도로 환경과는 거리가 먼 ‘특별 대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낮은 주행 속도로 인한 사고 빈도 감소까지 더해지면 이 데이터가 실제 도로 상황을 얼마나 충실히 반영하는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일부 기업은 이렇게 편향된 조건에서 축적된 빅데이터를 앞세워 수백만 ㎞ 무사고 운행을 홍보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그 숫자 이면에 어떤 조건과 환경이 깔려 있는지를 따져보면 그 실적이 의미하는 바는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레벨4 이전에 넘어야 할 또 다른 벽
법적 문제도 자율주행 시대를 가로막는 중요한 장벽이다. 수천 년에 걸쳐 ‘법적 인격체’인 인간을 중심으로 구축된 제도와 법체계는 자율주행차가 독립적인 행위 주체로 등장하는 순간,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다. 사고 시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전용 보험과 제도 정비, 증거 확보를 위한 전용 블랙박스 도입 등이 모두 선결 과제다.
윤리적 딜레마도 만만치 않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율주행차가 횡단보도의 어린이 5명과 마주쳤을 때, 인간 운전자라면 본능적으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탑승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계산해 어린이 1명을 희생하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른바 ‘트롤리 딜레마’다. 이처럼 기술적 진보보다 법적·윤리적 정비가 더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문제는
자율주행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그러나 선진국 대비 2~3년 뒤처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제도 지원과 산학연관의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3~4년 안에 다가올 레벨4 시대를 준비하는 단합된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Profile. 김필수
-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부 교수
- ㈔한국전기자동차협회장
- ㈔미래전기차산업기술연구조합회장
- 국무총리실,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서울시 등 정부 및 지자체 위원·정책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