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REPORT
SEPTEMBER 2025 Vol.246

SEPTEMBER 2025 Vol.246

MARKETING

브랜드의 힘,
커뮤니티에서 시작된다

책은 잘 팔리지 않지만 독서 모임은 늘고, 운동화보다 러닝 크루가 먼저 주목받는 시대다. 소비는 더 이상 제품에 머물지 않고 사람들과의 관계와 경험 속에서 완성된다. 취향과 소속감을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브랜드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되고 있다. 지금, 브랜딩의 패러다임은 ‘커뮤니티 퍼스트’로 이동 중이다.

글. 이승윤

Profile. 이승윤
- 건국대학교 경영학부 마케팅 전공 교수
- 디지털마케팅연구소 디렉터
- <디지털로 생각하라>, <구글처럼 생각하라>, <공간은 경험이다> 등

커뮤니티 브랜드란 무엇일까. 예전의 브랜드가 로고와 광고, 제품의 품질로만 기억됐다면 이제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관계 속에서 힘을 얻는다. 취향이 맞는 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달리기를 하고, 경험을 나누는 순간 브랜드는 단순한 상표를 넘어 ‘공동체’가 된다. 소비자는 상품을 소비하는 동시에 소속감을 확인하고, 기업은 그 결속을 통해 새로운 성장의 길을 연다. 커뮤니티 브랜드는 바로 이 흐름 속에서 태어난, 연결과 경험의 시대가 만든 새로운 브랜딩의 이름이다.

생활 속에서 피어나는 커뮤니티

문화체육관광부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성인 독서율이 2013년 72%에서 2023년 43%까지 추락했다.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성인이 10명 중 6명이란 이야기다. 출판 업계는 불황을 맞이했고 종이책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흥미로운 것은 ‘트레바리’와 같은 독서 기반의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설립된 트레바리는 개인의 관심사와 취향을 중심으로 책을 선정하고 이를 통해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4개월에 약 25만 원의 돈을 내야 하는 유료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10만 명 정도의 회원을 보유하며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 책은 팔리지 않지만 책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돈이 되는 세상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최근 러닝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가면 #오런완(오늘 러닝 완료)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올려진 러닝 인증 사진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러닝 붐이 단순하게 러닝과 관련된 제품의 판매 증가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러닝 커뮤니티 형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한강에 나가보면 여러 명이 함께 달리는 러닝 크루 커뮤니티 모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러닝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들이 앞다퉈 자체 커뮤니티를 만들어 내고 길러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퓨마 코리아는 ‘런퓨마팸(RUN PUMA FAM)’이란 공식 러너 참여형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유명 러너 인플루언서들과 일반 유저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러닝을 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나이키는 전용 러닝 앱인 ‘나이키 런 클럽(NRC)’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키워 나가고 있다. 앱에 접속하면 함께 러닝할 수 있는 모임을 찾을 수 있고 나이키에서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다양한 러닝 커뮤니티 이벤트에도 참석할 수 있다. 데상트 역시 ‘DRC(DESCENTE Running Community)’를 운영하며 특정 장소에 모여 러닝을 하고 러닝이 끝난 후 커피를 마시거나 함께 사우나를 가는 형태의 즐겁게 달리는 경험을 제공하는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바야흐로 좋은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려면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디지털 시대가 확산시킨 취향 공동체

커뮤니티(Community)는 라틴어 Communitas에서 유래한 말로 ‘공동체’ 혹은 ‘공동체 정신’을 뜻한다. 과거에는 같은 공간이나 지역을 공유하는 물리적 조직체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대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커뮤니티는 한 걸음 더 확장된 개념이다. 공통의 관심사나 취향을 공유하며 심리적 결속을 나누는 집단, 즉 소속감과 정체성을 함께 만드는 작은 사회로 이해된다.
이러한 정의는 단순히 언어적 기원에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취향이 점점 더 세분화되고 개인화되면서 시장 곳곳에서 취향 기반 커뮤니티(Interest-based Community)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예컨대 ‘민초단(민트초코파)’처럼 특정 맛을 선호하는 사람들조차 온라인에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시대다. 디지털 기술이 열어 놓은 개방성과 연결성은 관심사 중심의 모임을 훨씬 더 쉽게 만들고 또 다른 소비 경험으로 이어지도록 한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변화는 두드러진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2021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MZ세대의 70% 이상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이용하고 있으며 이 중 44%는 매일 접속한다고 답했다. 이는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라 일상적 소비·교류의 기반이 빠르게 커뮤니티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기업이 젊은 세대와 진정성 있게 소통하려면 전통적 광고나 일회성 캠페인보다 커뮤니티를 통한 관계 맺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기업 전략으로 확장되는 커뮤니티 브랜드

커뮤니티 브랜드의 대표적인 사례는 LG전자가 운영하는 ‘라이프 집(Lifezip)’이다. ‘우리는 집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지’라는 슬로건 아래 집에서의 시간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출발했다. LG전자가 이 플랫폼에 주목한 이유는 단순하다. 다양한 가전제품을 젊은 세대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깊이 이해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설문조사나 시장조사로는 얻기 어려운 인사이트를 커뮤니티 활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포착하려는 시도였다.
2022년 시작된 이 실험은 예상보다 큰 성과를 거뒀다. 2025년 상반기 기준 라이프 집 회원 수는 70만 명을 넘어섰다. 특별한 광고비를 들이지 않고도 ‘집 덕후’들의 입소문을 통해 성장한 결과다. LG전자는 나아가 식물 생활가전을 판매하기 위해 식물을 키우는 이들의 모임인 그로로(Groro) 커뮤니티도 운영 중이다. ‘틔운’ 같은 제품은 이렇게 커뮤니티 기반 경험과 결합하며 단순한 가전제품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
이처럼 브랜드와 비즈니스를 키우는 데 있어 커뮤니티적 가치가 커지면서 기업들은 점점 더 다양한 목표에 맞춰 커뮤니티를 세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레드불은 광고 대신 익스트림 스포츠 커뮤니티를 육성해 브랜드의 에너제틱한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고, 레고는 ‘레고 아이디어’를 통해 소비자가 직접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도록 한다. 무신사는 패션 애호가들의 커뮤니티에서 출발해 거대한 온라인 패션 플랫폼으로 성장했고, 오늘의집은 ‘집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시작해 국내 대표 홈퍼니싱 커머스로 자리 잡았다.
커뮤니티 시대가 열렸다. 이제 기업은 각자의 특성에 따라 기업이 직접 주도하는 커뮤니티를, 팬이 중심이 되는 자발적 커뮤니티를 전략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브랜드는 더 이상 상품을 파는 주체에 머물지 않는다. 커뮤니티라는 무대를 통해 소비자의 일상과 취향, 경험으로 들어가 함께 호흡하는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성장의 길이 열린다. 즉 커뮤니티 브랜드는 ‘함께 살아 숨 쉬는 경험’을 만드는 힘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