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REPORT
SEPTEMBER 2025 Vol.246

SEPTEMBER 2025 Vol.246

ESSAY

자비와 용서를
발휘할 때

글. 강용수



Profile. 강용수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니체 작품의 재구성> 등

CEO가 진행하는 사업은 대부분 계약을 통해 이뤄진다.
그리고 그 계약의 세부 사항은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특히 채권·채무 관계가 약속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회사에 큰 손실이 발생한다. 받은 것은 모두 되갚아야 하는 것이 정의의 원칙이기 때문에 손실에 대한 배상의 의무가 계약에 포함돼 있다. 채무상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손해를 입은 채권자는 채무자에게 피해 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
또한 회사 내에서도 직원들의 실수(절도, 배임 등)로 인해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법에 따른 처벌만이 최선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죄를 물으려는 의도는 자칫 잔인한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 자비로운 CEO라면 작은 실수나 손실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비와 용서는 어떻게 가능할까?
니체의 <도덕의 계보>에 따르면 잔인과 처벌, 보복과 증오는 공동체의 존재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가령 공동체의 힘이 약한 경우 처벌이 엄격하지만 공동체의 힘이 강해지면 개인의 위법행위에 예외적으로 용서가 가능해진다. 예전처럼 위법행위가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위험이 되지 않으면 범죄자를 추방하거나 처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적 위기나 전쟁을 겪는 상황에서는 빵 하나를 훔치는 것도 큰 범죄가 될 수 있지만 경제 상황이 좋아져 모두 풍족해진다면 생활형 절도죄는 눈감아줄 수도 있다. 가난한 나라는 도둑질을 엄격하게 처벌하겠지만 부유한 나라는 좀도둑 정도는 용서할 수 있다. 이같이 처벌이 완화되는 과정은 고문과 신체형이 점점 사라지는 형벌의 역사에서도 확인된다. 잔인한 사형 집행을 대신해 피해자의 분노를 진정시킬 수 있는 타협과 조정이 등가물을 통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채권자가 부유할수록 채무자의 빚을 탕감할 수 있는 것처럼 군주의 힘이 강할수록 범죄자를 처벌하지 않고 내버려둘 수 있다. 정의란 원칙상 상호 간의 채권, 채무와 같은 약속을 지키는 데 있지만 약속을 파기할 때도 책임을 묻지 않고 내버려둘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 공동체가 안정될수록 처벌이 완화돼 심지어 처벌하지 않는 단계에까지 이르는 것처럼 자비와 용서는 강한 자의 특권이자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일이다.


니체는 형법을 통해 경제적 부정의를 시정하는 것도 좋지만 궁극적으로 법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을 통한 정의가 지향하는 지점은 역설적으로 법의 효력이 더 이상 없는 ‘자비(Gnade, Mercy)’다. ‘정의의 자기 지양(自己 止揚)’이라고 불리는 자비는 법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말한다. ‘자비’는 다른 말로 하면 사면권을 뜻하는데 자칫 악용될 위험이 있다. 권력자가 자신의 재량에 따라 사면권을 남용해 자기편 사람들만 풀어 준다면 부정부패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CEO에게도 법에 대한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현명한 CEO라면 엄격한 법의 원칙도 중요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손실에 대해 자비를 발휘하는 유연함과 여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