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게
타인을 설득하기
글. 강용수
Profile. 강용수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니체 작품의 재구성> 등
인간은 자기 생각이 옳다고 믿으면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신념을 고치지 않고 우기는 상대방을 논리로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똑같은 대상에 대해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상대방이 틀렸다고 여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자신의 견해가 항상 옳다고 주장하는 속성을 타고났기 때문에 고집을 부리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자신의 인격과 개성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생각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러한 타자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고집하는 바탕에는 ‘타고난 교활함과 비열함’이 있다.
누구나 진실에 동의하게 되면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가 ‘천성적인 사악함’을 갖고 있어 본인과 다른 상대방의 견해를 옳은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본성상 남에게 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처럼 인간이 원래 정직하지 않고 사악하다면 남의 고집을 꺾는 방법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는 일이다. 합리적 논증에 근거한 ‘논리학’을 대신해 쇼펜하우어가 내세우는 ‘토론술’은 같은 상황에 대해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이다. 논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판단보다 교활함과 민첩함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토론술은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 피우는 사람의 부정직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주장을 공격할 수 있는 ‘검술’과 같다. 이성에 따라 판단하는 진리와는 무관하게 꼼수에 속지 않고 상대방을 이길 수 있는 전략이다.
예를 들면 상대방에게 질문을 많이 하는 방법이다. 빠른 논증을 펴면서 무의미한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냄으로써 상대방을 정신없게 하는 방법이 효과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 말이나 많이 들으면 그 속에 무언가 있다고 착각한다. 또한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면 올바른 판단이 불가능하게 된다. 화를 돋우려고 비방하거나 트집을 잡으면 약점이 노출돼 상대방에게 타격을 입히는 일이 더 쉬워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반론을 제기할 때 목소리가 크면 클수록 훨씬 더 타당하다고 받아들인다. 말하는 태도가 뻔뻔하고 당당할수록 답변이 더 옳다고 여겨진다.
또한 전문적인 권위를 이용하면 많은 사람은 존경심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학식이 없는 사람에게 외국어나 사자성어를 쓰면 허영심이 큰 사람은 쉽게 동의한다. 자신감이 부족해서 뭔가 아는 척하려는 사람은 유식하고 의미심장한 ‘허튼소리’를 들으면 고개를 끄떡일 것이다.
토론술은 대화를 통해 설득과 합의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만 허용되는 예외적인 꼼수다. 쇼펜하우어는 대화 당사자의 학식이나 수준이 서로 비슷해야만 설득과 논증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이해력이 부족하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검술로써 말다툼하지 않고 상대방을 선한 의지로 존중하는 좋은 대화 파트너를 찾는 지혜를 갖추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