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REPORT
JUNE 2025 Vol.243

JUNE 2025 Vol.243

SPECIAL ①

구조적 전환기 도래
다극화되는
글로벌 방산시장

러-우 전쟁과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로 글로벌 방산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장세는 장기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동시에 미국과 러시아 중심의 전통적 양강 체제는 흔들리고, 한국과 튀르키예 등 신흥 수출국이 부상하면서 방산 시장의 구조적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장 확장 속에서 방산 생태계는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을까?

글. 박혜지

Profile. 박혜지
-산업연구원 안보전략산업팀 연구원
- <글로벌 방산생태계 최근 동향과 K-방산 혁신생태계 조성방안>, <국내 방위산업의 민군협력 최근 현황과 활성화 방안> 등

러-우 전쟁, 미-중 전략 경쟁, 중동 불안정 등으로 글로벌 안보 위기가 심화하면서 방위산업은 단순한 군수산업을 넘어 국가 경제와 산업 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기술력, 가격 경쟁력, 신속한 납기 등을 무기로 K2 전차, FA-50, 천무 등 주요 무기체계의 수출 성과를 거두며 ‘K-방산’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글로벌 방위산업의 동향을 비롯해 국내 방위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둘러본다.

국제 안보 환경의 변화와
급증하는 방산 수요

최근 국제사회는 냉전 이후 가장 격동적인 안보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2022년 발발한 러-우 전쟁은 유럽 안보의 근간을 뒤흔들며 재래식 전면전의 가능성을 다시금 현실화시켰고, 2023년 이후 심화한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은 중동 전역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아시아 지역에서도 대만 해협을 둘러싼 미-중 간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면서 주요 지역에서의 무력 충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갈등은 단발적인 사건을 넘어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안보 불안 요소로 작용하면서 각국의 안보 전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의 증대는 글로벌 방산 수요의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지속해서 증가해 온 글로벌 국방비는 러-우 전쟁의 장기화, 미-중 전략적 경쟁의 심화, 중동 정세의 불안정성 등 복합적인 위협 요인에 대응하려는 각국의 군비 확충 기조에 힘입어 2023년부터 상승 곡선이 더욱 가팔라졌다.
또한 방산 수요는 지정학적 요인 외에도 국제 정치 환경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특히 2025년 1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한층 강화됐고, 이에 따라 동맹국 및 우방국들에 자주국방과 국방비 증액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GDP의 최대 5%를 국방비로 지출하도록 압박하며 미국의 안보 보장에 상응하는 재정적 기여를 강조했다.
이러한 요구는 NATO는 물론 한국과 일본 등 주요 우방국들에도 실질적인 국방력 강화의 압력으로 작용하며 글로벌 방산 수요를 더욱 자극하고 있다.



글로벌 방산 시장의
구조적 재편

국제 안보 위협의 장기화와 이에 따른 군비 경쟁 심화는 단순히 수요의 증가에 그치지 않고 방산 시장의 구조적 재편을 야기하고 있다. 과거에는 미국과 러시아가 방산 수출 시장을 양분해 왔으나 최근 5년(2020~2024)간 이러한 양강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SIPRI에 따르면 러시아는 2015~2019년 전 세계 방산 수출의 21%를 차지했으나 최근에는 그 점유율이 7.8%로 급감해 프랑스(9.6%)에 2위 자리를 내주었다. 러-우 전쟁 이후 러시아산(産) 무기의 신뢰도 하락, 국제 제재로 인한 공급망 단절, 전쟁 장기화에 따른 생산 역량 한계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러시아의 약화로 생긴 공급 공백은 신흥 방산 수출국들이 빠르게 채워가고 있다. 한국은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호주, 이라크, 루마니아 등과 대규모 계약을 체결하며 세계 시장에서 주요 수출국으로 자리 잡았다. 튀르키예 또한 드론, 전술 차량, 장갑차 등에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 시장에서 급속히 입지를 넓히고 있다. 프랑스는 전통 방산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최근 라팔 전투기 수출을 확대하며 2위 수출국으로 약진했다.
방산 수출국뿐만 아니라 수입국 지형도 변화하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폴란드, 쿠웨이트 등 동유럽 및 중동 국가들이 신규 주요 수입국으로 부상했으며 이는 지정학적 위협의 최전선에 있는 국가들이 군사력 강화를 통한 자국 안보 확보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요에 한국, 튀르키예 등 신흥국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새로운 글로벌 시장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요컨대 글로벌 방산 시장은 전통 강국의 지위 변동과 신흥국의 부상이 동시에 진행되며 다변화가 뚜렷해진 구조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수출입 양상에 그치지 않고 방산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업의 성격과 협력 구조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로운 플레이어,
방산 생태계의 확장

방위산업은 민간 수요가 아닌 정부 수요가 절대적인 특수한 시장 구조상 시장의 확장은 곧 방산 생태계의 확대를 의미한다. 2023년 기준 록히드마틴, 레이시온, BAE 시스템즈, 에어버스 등 글로벌 상위 100대 방산기업의 매출은 전년 대비 5.3% 증가하며 6,3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신규 수주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앞서 계약을 체결한 F-35, 패트리엇 미사일 등 주요 무기체계의 양산이 본격화되면서 향후 수년간 주요 대형 방산기업들의 안정적인 성장세가 예상된다.
그러나 최근 방산 생태계에는 새로운 성격의 플레이어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러-우 전쟁을 기점으로 전쟁 양상이 재래식 무기 중심에서 전자전, 유무인 복합전, 사이버전 등으로 확장됨에 따라 첨단기술의 군사적 활용 필요성이 급부상했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율 시스템 등 민간 분야에서 검증된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 및 기술 기업들이 방산 분야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민군 협력이 활성화되면 기존 무기체계 개발에 비해 연구개발부터 전력화까지의 소요 기간을 단축할 수 있으며 이미 상용화된 기술을 기반으로 해서 비용 효율성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높다.
특히 최근 미국 국방부는 팔란티어, 안두릴 등 기술 기반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팔란티어는 AI 기반의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제공하며 작전 효율성을 제고하고, 안두릴은 AI 기반의 자율 운영 시스템을 무기체계에 적용해 신속하고 유연한 전장 대응 능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2024년 말 미국 정부효율부(DOGE) 수장인 일론 머스크의 발언과도 맥을 같이한다. 그는 F-35 전투기처럼 개발과 운용에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는 기존 무기체계의 한계를 지적하며 첨단기술 도입을 통한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국방 체계로의 전환을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기조는 유럽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지난 4월 EU 집행위원회도 AI, 사이버보안 등 첨단 이중 용도 기술이나 국방 관련 혁신 기술의 개발 및 도입을 촉진하고자 해당 분야의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는 2025년 3월에 국방백서 ‘대비태세 2030(Readiness 2030)’을 발표한 EU가 단기에 방산 역량을 제고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의 방향성을 파악할 수 있는 대목으로 글로벌 방위산업이 더욱더 개방적이고 기술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글로벌 방산 생태계는 기존의 전통적인 대형 방산업체 중심의 폐쇄적이고 대규모 자금과 장기간의 연구개발이 수반되는 구조에서 벗어나 기술 혁신과 유연한 협업이 가능한 다층적 생태계로 확장하고 있다. 이는 향후 글로벌 방산 경쟁의 패러다임이 첨단기술 도입과 전력화 속도, 협업의 유연성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커졌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