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란 무엇인가
글. 강용수
Profile. 강용수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니체 작품의 재구성> 등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일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10명의 사람을 만나면 1명은 무조건 나를 좋아하고, 2명은 무조건 나를 싫어하고, 7명은 내게 큰 관심이 없다고 한다. 따라서 타인의 비호감이나 무관심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지지나 후원을 받으려는 노력은 헛된 에너지 낭비일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것을 기대하는 나르시시즘부터 극복해야 한다.
쇼펜하우어는 인간관계를 ‘고슴도치’에 비유했다. 고슴도치는 겨울에 혼자 있으면 추위에 얼어 죽을 수 있어 다른 고슴도치의 체온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함께 모여서 겨울을 지낸다. 그러나 막상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를 가시로 찌르게 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인간관계와도 같다. 혼자 살면 고독사의 위험이 있지만 많은 사람을 만나면 서로 상처를 줄 수 있다.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은 고통을 줄 일이 없지만 가까운 사이는 쉽게 마음을 다치게 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는 척, 가진 척, 잘난 척하려는 허영심이 있다. 자식 자랑, 집 자랑, 돈 자랑 등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자신을 지나치게 과시하는 것은 남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타인과의 비교로 행복과 불행을 느낀다. 남이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면 시기심을 느껴 상대적인 박탈감을 갖는다. 예를 들면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번 사람을 보면 자신은 ‘벼락거지’라고 좌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기대해 하나가 되려는 것도 좋지 않다. 친밀하다고 해서 자신의 비밀을 모두 발설하는 것은 위험하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비밀은 오직 자신과 자식에게만 털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허심탄회하게 보여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자칫 선을 넘는 일이 생긴다. 가까울수록 고슴도치의 가시가 깊이 찌를 수 있듯이 친밀한 사람일수록 깊은 상처가 남는다. 특히 부모와 자식, 부부, 연인은 오랜 세월을 함께했기 때문에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안다고 판단해서 충고나 조언, 직언을 한다.
따라서 친한 사람일수록 말을 아껴야 하며 상대방이 말 한마디에 상처받지 않을까 신중해야 한다. 100번의 칭찬보다 1번의 험담이 인간관계의 신뢰를 완전히 깰 수 있기 때문이다. 고슴도치는 가까이 가면 가시를 눕히는 지혜를 발휘한다고 한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혼자서만 지낼 수 없는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해서는 타인이 느낄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을 가져야 한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인생에서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중한 인연을 깨지 않도록 주의하는 일이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간극을 유지하는 비법이 쇼펜하우어가 말한 ‘예의와 정중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