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REPORT
JUNE 2025 Vol.243

JUNE 2025 Vol.243

MARKETING

지역사회의
새로운 경제 가치,
로코노미

‘로코노미(Loconomy)’는 ‘로컬(Local)’과 ‘이코노미(Economy)’의 합성어다. 기존에 써왔던 ‘지역 경제(Local economy)’라는 용어가 있음에도 로코노미가 대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역 경제와 로코노미의 차이란 무엇일까? 로노코미란 무엇인가?

글. 민용준

Profile. 민용준
-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 전 <에스콰이어> 피처디렉터

어느 지역 도시의 특정 빵집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면 그 빵집은 해당 지역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혹은 특정 지역의 특산물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타 지역민들의 주문이 쇄도한다면 그 역시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경제 효과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지역 경제란 이처럼 한 지역 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경제활동을 의미하는 용어다. 해당 지역 안에서 이뤄지는 경제활동이 얼마나 원활한지 혹은 해당 지역 내로 유입되는 경제 효과가 얼마나 큰지 등 말 그대로 지역 내 경제활동 사정을 논할 때 쓰는 말이다.



지역 경제와 로코노미, 그 차이는?

만일 어느 기업 혹은 브랜드가 특정 지역의 유명 빵집과 협업해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전국적으로 유통한다면? 일단 그때부터 발생하는 경제효과는 그 빵집이 위치한 지역 경제에만 영향을 주는 결과가 아닐 것이다. 그 빵집이 자리한 지역을 넘어 빵을 팔 수 있는 전국의 다양한 기성 점포에 입고되고 판매될 것이다. 그때부터 그 빵집의 경제효과는 특정 기업이나 브랜드의 유통망을 등에 업고 지역 경제를 넘어서는 파급력을 얻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빵은 아니지만 그 빵집이 있는 지역을 명확하게 인지하도록 권하는 선전 효과를 만든다. 빵집이 한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럴 때 쓰는 용어가 로코노미다.
‘지역 경제’가 지역민들의 먹거리를 만들어 주는 지역 내 산업을 논할 때 더욱 적절하게 여겨지는 용어라면 ‘로코노미’는 한 지역 내에서의 경제효과를 넘어 특정 지역 자체가 소비 영향력과 경제적 효과를 가진 브랜드로 인식되는 현상을 정의하는 용어에 가깝다. 이를테면 전라남도 완도군의 특산물로 유명한 전복을 유통하는 것과 그 전복을 넣어 개발한 프랜차이즈 메뉴를 개발하는 건 다른 의미라는 것이다. 물론 로코노미를 통해 발생한 경제효과는 궁극적으로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행사할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새로운 경향이 떠올랐다. 특정 지역의 빼어난 경관을 즐기기는 어렵지만 식도락 즐기기를 가능하게 해 줄 서비스 이용 빈도가 늘어난 것이다. 특정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나 특정 가게에서만 파는 음식을 직배송하는 산지 직송 플랫폼 이용 횟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직접 가지 않아도 모바일 접속만으로도 전국의 산해진미가 문 앞까지 배달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실제로 카드 소비 데이터를 분석했을 때 부산, 전주, 인천 등 지역명을 상호로 활용한 가게명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도 한다. 이것이 바로 로코노미가 대두한 전말이다.
사실 이런 경향이 팬데믹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더 이상 ‘집콕’할 필요 없는 엔데믹 이후로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외출을 하고 여행을 다닐 것이므로 로코노미는 특정 기간을 지배하던 현상에 머무를 것이라는 추측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고 한 번 맛을 들이면 놓기 어려운 법이다. K 카드사에서 발표한 개인 신용·체크카드 매출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엔데믹 이후로 지역 축제 방문객이 증가했다고 한다. 축제가 열린 지역의 오프라인 가맹점 매출액에서 외부 방문객이 차지하는 매출 건수 비중이 상당수 늘었다는 것이다. 이에 힌트를 얻은 몇몇 카드사에서는 발 빠르게 지역 가맹점 할인 프로모션을 제공하는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를 발행하며 로코노미 트렌드에 부합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로컬을 넘은 하이퍼로컬

사실 지역 자체를 고유한 브랜드처럼 내세우는 방식은 코로나19 이전에도 다양한 브랜드 마케팅을 통해 제시된 바 있다. 특히 고유 지역의 대표 주자를 표방하는 수제 맥주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특정 지역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강조한 수제 맥주를 소비한다는 건 해당 지역을 여행하지 않고도 유사 여행의 기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로컬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사례에 가깝다. 반대로 전국 각지의 유명 빵집을 순례하듯 돌며 여행하는 것을 일컫는 ‘빵지순례’는 특정 지역을 찾는 실질적인 계기를 제공하고 재미를 더해주는 경험의 창구가 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다. 그 지역에 방문해야만 맛볼 수 있는 빵을 사서 맛보고, 이를 인증하는 이들을 통해 유행을 넘어선 고유명사 같은 것이 됐다. 이제는 특별히 빵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지역의 유명 빵집을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인 여행 방식처럼 여겨질 정도다.
이런 현상이 지역성 고유의 개성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으로 발달했던 것이 팬데믹 이전 상황이라면 팬데믹 이후의 로코노미는 지역성을 소비하는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된다는 면에서 더 나아간 현상처럼 보인다. 지방의 유명 맛집과 협업한 간편식 제품이 상당수 늘어난 것 또한 이런 현상의 근거로 유용해 보인다. 제주 한라봉을 넣은 생크림빵이나 진도의 대파를 활용한 버거, 화성에서 수확한 쌀 품종으로 지은 즉석밥, 영덕 대게를 활용한 간편식이나 가공식품 등 언제부턴가 식재료보다도 식재료의 원산지를 강조한 메뉴나 음식을 개발하고 홍보하는 기업이나 브랜드의 제품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만큼 지역성 자체가 제품의 고유한 특징을 대변하고 소비자의 흥미와 구미를 당기는 요소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로코노미 트렌드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단순히 특정 세대에 갇힌 유행이 아니라 남녀노소 불문한 전 세대적인 소비 경험이 너르게 반영된 데이터를 통해 읽어낼 수 있는 현상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로 인해 최근에는 ‘하이퍼로컬(Hyperlocal)’이라는 신조어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데 이는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가 세분화된 편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발달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지역성이 비즈니스 서비스의 새롭고 강력한 기반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 지역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이 개발된다는 것이다. 로코노미는 이제 단순히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치지 않는다. 로코노미는 지금도 유행을 넘어 지역사회 공동체의 결속을 돕는 방향으로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이렇듯 로코노미는 어느 한순간의 신기루 같은 유행이 아니다. 단절의 시대에서 연결의 가치를 일깨운 로코노미. 이제 뉴노멀을 넘어 노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