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새해 경제 전망
“불확실성 걷어내야 희망”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을 때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경제 전망이다. 관련 변수가 많은 탓에 어떠한 전망보다 어려운 것이 경제 전망이라지만 ‘어떻게’ 발생할지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경제 전망만큼 필수적인 것은 없다. 2024년 12월 23일 IBK기업은행 본사(서울 을지로)에서 주병기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의 진행 아래 전문가 3인의 새해 경제 전망이 이뤄졌다.
정리. 편집부 사진. 박동균
새해 경제를 전망하기 전에 2024년 경제는 어땠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나라 주력 산업의 전반적인 상황은 어땠나.
강성진 철강산업으로만 봐도 알 수 있다. 2024년
11월, 포스코는 글로벌 철강 공급과잉 현상, 해외 저가 철강재의 공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포항제철소 1제강공장과 1선재공장을 셧다운했다.
1선재공장은 가동을 시작한 지 45년 만이라고 한다. 석유화학산업도 중국과 중동의 공급과잉으로 ‘구조조정’이라는 이슈와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3조 원의 정책 자금을 수혈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자본의 흐름을 생각해야 할 때다. 한국은 고성장 시대를
지났으며 이미 1990년대 초반에 중진국에서 벗어나 선진국형 경제에 진입했다. 수출과 수입, 제조에만 국한하면 결국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옛 시대 경제 정책의 시각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백상경 동의한다. 경제를 비롯해 기업 경영 성과, 국가 경영 성과 등 모든 성과를 산정하는 지표가 쉽사리 바뀌지 않고 과거 지표에 고정돼 있다. 각종 방법론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렇지 않으니 계속해서 똑같이 흘러갈 수밖에 없다. AI 산업을 사례로 쉽게 얘기할 수 있겠다. 기존 제조업 중심의 평가 방법들은 AI 산업과 같은 혁신 산업에 제대로 적용할 수 없다. 이와 같은 현상이 우리나라 경제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 같다. ‘수출이 잘돼야 경제가 잘된다’라는 말은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우리나라가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수출하고 있는지, 특히 무엇이 주요 수출 품목이며, 어떤 부분에서 중국을 뒤쫓아 가게 됐는지 등 돌파구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신속히 찾아야 하는데 전혀 바뀌고 있지 않다.
조경엽세계는 지금 글로벌 대전환의 시대다. 4차 산업혁명과 같이 글로벌 혁신 경제에 접어들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변화에 조금 못 따라가는 듯하다. 심지어 우리나라 정통 주요 산업은 이미 중국이 앞서나가고 있으며 미국 등 선진국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철강, 석유화학, 정유와 같은 산업은 탄소 중립으로 인해 글로벌 수요가 상당히 줄어들어 출혈 경제에 직면했다. 빠른 전환이 필요하다. AI 산업을 살펴보자. AI 기술이 모든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체인지메이커로 등장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산업 적응력은 중국, 인도보다 훨씬 떨어져 있어 안타깝다. 구조 개편보다는 산업의 전환을 서둘러야만 글로벌 대전환에 적응할 수 있겠다.
2024년 11월, 국내외 기관에서 내놓은 2025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 수치가 굉장히 낮다.
백상경 수출 둔화, 투자 감소 등 복합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1.9%, 골드만삭스는 1.8%, 국제통화기금(IMF)은 2.0%로 전망했다.
특히 한국은행은 기존 전망치인 2.1%보다 훨씬 낮은 수치를 발표했다. 이는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탄핵 결과가 반영되기 전 수치다. 더 떨어질 수 있겠다. 또한 작년 하반기만 톺아봐도 국내외 주요 기관이 내놓은 분석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2024년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7월 세계 경제 전망 수정’에서 우리나라 경제가 2.5%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실제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와 전혀 동떨어졌던 경쟁률에 불과했다. 수출이 경제성장률을 거의 책임지고 있는데 하반기에 접어들어 수출 둔화가 이뤄지면서 확실히 경제가 꺾였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라고까지 표현될 정도다.
강성진 2024년 말에 접어들면서 2024년 초의 예상보다 좋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회복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기대만큼 닿지 않았다. 중동전쟁, 러우전쟁 등 외부 요인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연초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매해 반복되기는 하나 2024년에는 유독 심했다. 특히 중국의 과잉 생산과 저가 수출 등 중국 기업들이 과잉 생산한 제품을 해외시장에 헐값에 팔아버리는 수출 전략, 즉 중국발 덤핑 공세로 우리나라 주력 산업들은 힘을 전혀 못 쓸 정도가 되지 않았나. 새해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업뿐 아니라 서민들의 상황도 좋지 않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11월 말 기준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 신청 인원은 17만 9,310명에 달한다. 12월 건을 고려하면 18만 건에 육박하는 수준인데 이는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서민들이 코로나19 시기보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조경엽 코로나19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부채 조정 등의 과정을 거쳤다면 극복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강성진 교수 의견에 덧붙여 말하자면 2024년 초만 해도 2% 이상의 성장이라는 기대가 상당했다. 하지만 2분기에 들어서 역성장하고 3분기에 간신히 2%의 성장률을 보였다. 특히 2, 3분기에는 가계부채 등의 요인으로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리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내리지 못한 것이 내수에 영향을 준 것으로 예상한다. 부동산 PF 부실 문제와 원자재 가격 상승도 빠질 수 없다. 4분기에는 기준금리 인하의 영향이 와닿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률이 하향 조정됐음에도 2%를 과연 달성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한국 정부의 경제, 재정 정책을 바탕으로 향후 방향성을 진단한다면.
강성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시장금리는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반응을 보였다. 동맥경화라고 할 수 있겠다. 상황에 따라 재정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오히려 막았다. 원론적으로 보면 물은 아래로 흘러가야 한다. 한국은행이 투자, 대출 등의 기대로 이자율을 내렸는데 금융감독원은 부채를 동결했다. 흘러 내려가야 경제가 살아나는데 그러지 못했다. 특히 한국은행은 부동산, 교육 등 소위 ‘걱정거리’가 많다. 이건 한국은행의 일이 아니다.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에 따라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가 때에 맞춰 재정 정책을 펼치는 것이 맞다. 전반적으로 경직돼 있다.
백상경 한국은행에서 금리를 인하했지만 효과가 있었나? 아니라고 본다. 돈이 흘러가야 하는 길을 끊어버린 상황에서 서민들의 불안함은 더욱 커져만 가고 지갑은 더 열지 않게 된다. 과연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소비로 이어졌을까? 오히려 섣부른 소비를 지양하고 코인, 미국 증시 등 더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쪽으로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확실히 내수 경기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흘러가지 않았으며 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나.
조경엽 한국은행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 것은 사실이다. 2024년 들어 주택 및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로 주택 가격이 반등하기 시작했다. 이에 가계 부채는 늘었다. 한국은행으로서는 금리를 인상하는 게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최근에는 환율도 확 오르는 등 과감한 금리 정책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 것이다. 계속 불확실성만 키워가고 있다. 정부는 상속세, 금투세부터 반도체특별법, 전력망 확충 특별법 등과 관련해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개혁과 혁신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는 계속해서 정부 지원을 받고 혁신이 일어나는 과정에 있는데 우리나라는 정부가 발목을 잡고 있다. 이는 분명히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되고 저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반도체특별법, 전력망 확충 특별법 등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주요 선진국은 어떤가.
백상경 일본이 작년 말에 가결한 2024 회계연도(2024년 4월~2025년 3월) 추가경정예산안(이하 추경)을 보면 총 130조 원으로 AI 산업과 반도체 산업
지원에 12조 원이 포함돼 있다. 일본은 2023년에도 추경에서 1조 8,000억 엔을 반도체 산업에 배정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 유치 및 자국 기술 개발에
총력하며 이른바 ‘반도체 부흥’을 노리고 있다. 기업 육성을 위해서도 조 단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여야가 잘 맞춰가고 있는 일본에 반해 우리나라는 정치권이라는 굴레 안에서 맴돌고만 있다.
강성진 중국 역시 64조 원 규모의 국가반도체산업 투자펀드를 출범했다. 중국의 사상 최대 규모이기도 하다.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산업 자립을 계속해서 추구하겠다는 것으로 보
인다.
조경엽 ‘한국이 아닌 미국 등 외국에서 짓는 게 훨씬 빠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반도체 공장 등의 전력 공급을 위한 전력망 특별법도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백상경 기자가 앞서 말했듯 일본은 총력을 다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오히려 기업이 읍소하는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 관련 인센티브 규모는
세액공제를 포함해도 1조 2,000억 원으로 일본의 10분의 1, 미국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일본뿐 아니라 미국 역시 반도체 제조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투자에 나서고 있다. 이에 중국도 지원액을 늘리며 추격에 나서고 있으며 유럽연합(EU)도 반도체 산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며 경쟁에 가세했다.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나라는 엄청난 손실의 현재진행형이다.
세계 경제 상황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요 선진국들은 세계 경제 전반적인 침체 국면을 어떻게 돌파하고 있는가.
강성진 우리나라는 세계 시장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의 나라가 아니다. ‘스몰 컨트리(Small Country)’라는 한계가 있다. 코로나19, 러우전쟁, 중동사태,
그리고 트럼프 2기가 이제 시작한다. 이처럼 대외 의존도가 아주 높아 한계가 있다. 또 선진국들은 현재 딜레마에 있다. 유럽의 경우 독일과 프랑스의 정치 불안이 경제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조경엽 미국만 ‘나 홀로’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다만 미국이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했으니 전반적으로 주요 선진국들도 금리를 인하하면서 물가 안정,
소비 회복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과 달리 트럼프 리스크가 상당히 작용하고 있다. 미국 연방공개준비위원회 금리 인하가 계속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강(强)달러 현상을 무시할 수 없다. 미국의 트럼프 2기 출범, 금리 인하 등을 바탕으로 한 통상 정책, 산업 정책이 오히려 물가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