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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25 Vol.238

2025 JANUARY vol.238

ESSAY

나이가 들면
저절로 철학자가 된다

글. 강용수



Profile. 강용수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니체 작품의 재구성> 등

필자의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의 판매량이 1년 만에 50만 부에 육박하면서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느낀 바는 그 열풍이 20대까지 당연히 이어질 것이라 확신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그 책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반응은 그다지 뜨겁지 않다. 철학에 대한 선입견 가운데 하나는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뜬구름 잡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는 비판과 함께 홀대받아 온 철학이 크게 주목받은 이유가 필자도 궁금하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나이가 들면 저절로 철학자가 된다고 한다. 그 시점이 마흔이다. 40년 동안 축적된 경험이 숙성돼 비로소 결실을 맺는 시기다. “우리 인생의 첫 40년은 본문을 제공하고, 그다음 30년은 그것에 대한 주석의 성격을 지닌다.” 우리는 우선 40년은 직접 겪어봐야 하고 나중에 30년은 그것이 뜻하는 바를 되짚어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최소한 70년을 살아봐야 인생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젊을 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이 만들어낸 생각, 인습, 편견, 환상 등으로 왜곡하는 일이 많다. 점차 어느 정도 세상의 경험이 쌓이는 나이가 되면 젊을 때 가졌던 오류에서 벗어난다. 적어도 마흔 살이 돼야만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게 되는데 이것은 교육 수준이나 정신적인 능력과 크게 관련이 없다. 평범한 사람도 나이가 들면 자신의 경험에서 나오는 나름의 관점을 갖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 나이에 맞는 사유를 할 줄 안다.

마흔이 넘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면서 공평한 시각을 갖게 된다. 성숙한 인간은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젊을 때는 외부의 자극에 영향을 받으며 크게 흔들리지만 나이가 들면 자신의 확고한 주관을 만들게 된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인간이 젊을 때는 ‘시문학’에 빠지지만 노년기에는 ‘철학’에 빠져든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야 알게 되는 진실은 세상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다. 많은 것은 가려져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허영심과 같은 가면으로 가리고 있는데 평생 가면을 쓸 수는 없다. 그래서 인생의 끝자락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가면을 벗게 되는데 그동안 숨겨진 인간의 본성, 세상의 모습에 환멸과 실망을 느끼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격언, ‘너 자신을 알라’의 함의는 나이가 들어야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이뤄지는 시기가 중년이다. 젊을 때는 열정과 욕망이 크지만 나이가 들면 전체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된다. 오늘날 철학 교양서가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 든 사람에게 더 인기 있는 이유는 쇼펜하우어 철학보다 ‘마흔’이라는 키워드가 더 마음에 와닿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은 인생의 성숙기에 일어나는 자신의 객관화에 필요한 사유의 힘을 키우는 데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