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플레이션:
즐거울 때
활짝 지갑이 열린다
경제 불황에도 아이유 콘서트는 연일 매진이며, 2024 KBO리그는 사상 첫 천만 관중을 돌파했다. 즐거움 앞에서 가벼운 주머니 사정은 크게 중요치 않다. 펀플레이션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글. 박지현
Profile. 박지현
-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 <문화트렌드 2025> 공저
요즘 공연 티켓팅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보고 싶은 공연을 예매하려고 타이머까지 맞춰놓고 예매 사이트에 접속하지만 대부분은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고 허탈하게 돌아선다. 특히 지난 11월 한국 초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뮤지컬 <알라딘>은 티켓 오픈과 동시에 전석 매진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이런 상황을 두고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이라는 표현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더욱 놀라운 점은 뮤지컬 <알라딘>의 티켓 가격이 VIP석은 19만 원, R석은 16만 원에 달한다는 점이다. 지난 12월 내한한 유명 팝 가수 찰리 푸스의 공연 티켓도 11만 원에서 22만 원에 이르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10분 만에 매진됐으며 SNS에서는 재판매 가격이 40만 원 이상을 호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팬데믹 이후 재개된 공연과 이벤트의 가격이 전례 없이 상승해 평범한 미국 가정들이 여가 활동을 포기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도하며 이 현상을 즐거움(Fun)과 물가 상승(Inflation)을 결합한 ‘펀플레이션(Funflation)’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공연 입장료가 1년 새 평균 6.3% 상승했는데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3.8%였던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증가율이라고 볼 수 있다.
여가 비용 상승은 공연장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OTT 플랫폼들도 구독료를 잇달아 인상하면서 ‘스트림플레이션(Streamflation)’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스트리밍(Streaming)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결합한 이 용어는 구독료 인상으로 인해 소비자 부담이 늘어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2024년 넷플릭스, 디즈니+, 유튜브 프리미엄 등 주요 OTT 플랫폼들은 20~40%의 요금 인상을 단행했으며 이에 따라 소비자 부담은 더욱 커졌다. 이러한 구독료 인상의 배경에는 OTT 시장의 치열한 경쟁과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비 상승이 있다.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악화한 OTT 플랫폼들은 결국 구독료 인상, 광고 요금제 도입, 가족 외 계정 공유 제한 등의 카드를 꺼내 들게 된 것이다.
특별하다면 비싸도 괜찮아
그렇다면 여가 비용의 상승이 이렇게 가속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팬데믹 이후 변화된 소비 심리를 살펴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팬데믹 동안 제한됐던 사회적 활동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작용해 소비자들은 ‘놀 수 있을 때 제대로 놀자’라는 마음으로 여가에 더 큰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특히 공연이나 스포츠 이벤트처럼 현장성을 중시하는 여가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2024년은 프로야구가 사상 최초로 ‘1,000만 관중’ 시대를 연 해이기도 하다. 정규 시즌 720경기 중 221경기가 매진됐고 포스트시즌에서는 한국시리즈까지 16경기 모두 매진을 기록하며 인기를 증명했다.
또한 자신만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소비 가치 변화 역시 펀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여가 소비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러한 소비자들은 실제로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20%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 티켓을 사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영화 산업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서도 아이맥스, 4D, 스크린X, 돌비시네마 같은 특별관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 역시 이러한 소비 트렌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소비 트렌드는 관광 분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의 여행 트렌드는 호캉스나 맛집 투어가 아니라 자기만의 의미 있는 경험을 찾는 것이다. 영화나 TV 쇼, 다큐멘터리 촬영지로 떠나는 ‘세트제팅(Set-jetting)’이나 콘서트, 축제 등 특별한 이벤트 중심의 ‘이벤트 관광(Event Tourism)’이 주목받고 있으며 오로지 휴식을 위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자들이 자신의 가치와 기준에 맞춘 소비를 선호하며 새로운 경험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모습을 보여준다. 팝업스토어나 체험형 전시에 많은 소비자가 몰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소비자에게 즐거운 경험을 판매하라
펀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공연 한 번 보려면 너무 힘들다”거나 “놀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야기가 흔해졌다. 그런데 왜 여가 분야의 인플레이션은 줄어들 기미가 없는 걸까? 그 답은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여가 활동을 소셜미디어에 남기며 자신을 표현한다. 이런 게시물은 보는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근심 걱정 없이 여가를 즐기는구나’라는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이제 여가 활동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예를 들어 뮤지컬을 관람했다는 사실은 높은 티켓 가격을 감당할 경제적 여유, 공연을 볼 시간적 여유, 공연을 이해할 문화적 이해력을 상징한다. 여기에 치열한 온라인 예매 경쟁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디지털 활용 능력까지 인정받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펀플레이션은 단순한 비용 상승이 아닌 소비자 심리와 사회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정치적·경제적 불안이 계속되고 있지만 기술 발전과 주 4일제 논의 확대로 사람들의 여가 시간은 점차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제 기업들은 소비자에게 의미 있는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는 차별화된 전략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할 때다. 롯데월드는 아이들이 직접 공주, 왕자 의상을 입고 퍼레이드에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행사를 기획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메이크업부터 의상 대여, 퍼레이드 참여에 드는 비용은 최소 35만 원에서 최대 70만 원에 이른다. 절대 저렴하지 않은 비용이지만 동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에 주말과 특별 시즌에는 예약이 몰릴 만큼 화제가 됐다. 우리 기업은 소비자들에게 과연 어떤 재미와 행복을 제공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