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026 Vol.256

NOW TREND

숏폼과 AI가 준 불안
책을 펼치니 날아갔다

글. 강정화

숏폼은 짧아지고, 인공지능은 더 똑똑해지고 있다. 정보를 얻고 답을 찾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사람들은 오히려 독서의 가치를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텍스트 힙 열풍 이후 책이 우리에게 남기는 의미를 돌아볼 때다.

유행이 된 독서, 텍스트 힙의 등장

한강의 노벨상 수상 이후 한동안 SNS는 독서를 인증하는 사진으로 넘쳐났다. 종이책을 읽는 것이 가장 힙(Hip)하다는, 일명 ‘텍스트 힙’ 현상에 노벨상 수상이 불을 지른 것이다. 각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독서 모임이 활성화됐고, 유명 작가의 책은 연일 품절 사태를 겪었다. 이를 두고 SNS 인증을 위한 소비에 불과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독자와 작가, 출판업계까지 오랜만에 찾아온 독서 열풍을 반겼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 사람들이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는 점에서 희망이 섞인 전망도 잇따랐다. 하지만 뜨겁게 타올랐던 종이책 열풍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세상은 도파민으로 가득 차 있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 새로운 유행은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텍스트 힙이 사회적 유행으로 번졌지만 실제 독서율은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독자의 독서율은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반면에 시각을 기반으로 한 매체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영상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집에 앉아 한 편의 영상을 끝까지 시청하기보다 이동 중이거나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짧은 영상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유튜브와 SNS를 중심으로 숏폼이 확산됐고, 영상의 길이는 점점 짧아졌다. 한 시간짜리 드라마는 20분 요약본이 되고, 그것마저 길다며 15초 영상으로 소비된다. 여기에 AI까지 더해지면서 ‘요약’과 ‘압축’의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너무나 똑똑한 인공지능은 책의 제목만 넣어도 곧바로 요약하고, 주요 내용까지 정리해 준다. 10년을 읽고 또 읽어야 이해할 수 있었던 철학자의 사상마저 몇 초 만에 정리해 주는 AI 앞에서 우리는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할 이유를 묻게 된다. 종이책은 정말 이렇게 사라지는 것일까.



2025년 역대 최대 흥행을 기록한 서울국제도서전은 2026년에도 열기를 이어갔다.
독서와 출판을 둘러싼 사회적 관심이 여전히 높음을 보여준 사례.
(ⓒ서울국제도서전)





숏폼 세대가 느끼는 ‘본능적인 불안’

다시 독서로 돌아가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의외로 숏폼과 AI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자신에게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긴 시간과 힘을 들여야 하는 독서와 달리 숏폼은 짧고 강렬하며, 무엇보다 재미있다. 정보를 찾고 글을 써주는 AI는 편리하다. 어쩌면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 속에서 인류는 생각하기의 고통에서 벗어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즐거움과 편리함이 커질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라는 불안이 올라온다. 그것은 이대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불안’이다.



서울광장 야외도서관에서 독서를 즐기는 시민들.
(ⓒ서울시)





생각하는 힘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이 불안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과는 결이 다르다. 누군가가 대신 읽어주고, 요약해 주고, 답을 내어주는 세상은 분명 효율적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이 불안한 이유는 생각이란 것은 정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고, 때로는 길을 잃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이해해 왔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형성돼 온 자기 자신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감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는 우리 안에 숨어 있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한 문장을 읽고 멈추어 생각하고, 앞 장으로 돌아가 다시 읽고,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붙들고 씨름하는 동안 자신의 기억과 감정으로 텍스트의 빈자리를 채워 나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오독에 빠지기도 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길을 찾기도 한다. 같은 책을 읽고도 저마다 다른 장면을 떠올리고 다른 의미를 발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흔히 독서를 결과로 생각하지만 독서의 가치는 오히려 그 과정에서 빛을 발한다. 생각하는 힘은 정답을 빠르게 얻을 때보다 이해하기 위해 머뭇거리는 시간 속에서 자라난다. 당신이 어느 날 문득, 넘쳐나는 편리함에서 불안한 마음이 든다면 그 불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나를 잃지 않기 위한 본능이 보내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비록 긴 글을 읽고 쓰는 과정이 모나게 울퉁불퉁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길러진 생각하는 힘만큼은 무엇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느린 시간이야말로 생각이 무르익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Profile. 강정화

- 고려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