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026 Vol.256

BRAND LEADER

오틀리가 낙농업계와
싸우면서도 성장한
비결

글. 정덕현 사진. OATLY

귀리 음료 한 팩이 전 세계 소비자의 팬덤을 만들고 거대한 낙농업계와 맞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오틀리(OATLY)는 제품이 아닌 철학으로 성장한 브랜드다. 이들은 평범한 귀리 음료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바꾸며 글로벌 시장을 사로잡았다.

연구실에서 태어나
거리에서 자란 브랜드

오틀리의 역사는 1994년 스웨덴 룬드대의 한 연구실에서 시작했다. 창업자인 식품 과학자 리카드 외스테(Rickard Öste)가 귀리의 전분을 엿당으로 변환해 우유와 유사한 질감을 내는 독점적인 효소 가수분해 공정을 개발한 것이다. 이로써 유제품을 섭취하면 설사, 복통 등을 겪는 ‘유당불내증’ 환자들을 위한 기능성 음료가 탄생했다. 당시만 해도 오틀리는 철저히 ‘의료적 필요’에 응답하는 제품이었다. 브랜드 철학도, 감각적인 디자인도, 소비자와의 접점도 없었다. 제품력은 뛰어났지만 보수적인 유럽 낙농업의 벽과 매력이 별로 없는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오틀리의 성장은 초기 20여 년간 정체돼 있었고, 대중의 관심에서도 한동안 비켜나 있었다.
전환점은 2012년에 찾아왔다. 토니 피터슨(Tony Peterson) CEO와 존 스쿨크래프트(John Schoolcraft)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가 합류하면서부터다. 두 사람은 형식에 얽매인 기존 마케팅 부서를 전면 폐지하고 강력한 권한을 지닌 크리에이티브팀을 조직의 중심에 세우는 파격적인 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급진적인 변화에 내부 반발도 적지 않았지만 오틀리는 새로운 비전을 공유하며 기업의 목표를 다시 세웠다. ‘단순한 대체유 제조사’가 아니라 탄소 배출과 환경 파괴를 줄이고 ‘식물성 기반 사회’를 앞당기겠다는 뚜렷한 철학을 가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기업의 정체성을 재정의한 것이다. 기술로 태어난 브랜드가 철학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포장지가 광고판이 되던 날,
안티 마케팅과 솔직함의 승리

분명하고 새로운 비전을 세웠지만 오틀리는 대기업과 같은 막대한 미디어 광고 예산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상업적인 불문율을 과감히 깨고 자사 제품의 패키징 자체를 소비자와 소통하는 가장 강력한 소유 미디어(Owned Media)로 탈바꿈시켰다. 매끈하고 완벽한 디자인 대신 마치 지하실에서 손으로 휘갈겨 쓴 듯한 불규칙하고 빽빽한 텍스트 디자인을 채택했고, 법적으로 반드시 기재해야 하는 영양 성분표가 있는 뒷면을 ‘지루한 면(The Boring Side)’이라 부르는 식의 유쾌한 위트를 더했다. 제품을 손에 든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읽고, 웃고, 공유하게 만드는 것. 오틀리가 패키징에서 노린 건 바로 그것이었다. 대기업 특유의 권위적이고 인위적인 포장을 걷어내고 대신 소비자와 날 것으로 소통한다는 태도를 디자인적으로 구현한 셈이다.
카피라이터 출신인 스쿨크래프트는 오틀리의 메시지를 한층 직설적이고 도발적으로 만들었다. “우유 같지만, 사실 사람을 위해 만들었습니다(It’s like milk, but made for humans)*”라는 카피가 대표적이다. 인간이 성인이 된 후에도 다른 동물, 즉 소의 젖을 먹는 오랜 습관을 비틀면서 동시에 오틀리가 ‘동물성 제품의 기존 우유가 아님’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WoW no cow(와, 소가 아니네)” 같은 슬로건도 마찬가지다. 운율을 살린 이 짧은 문장은 SNS 시대의 밈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도발적 카피는 스웨덴 낙농업계와의 대규모 소송, 이른바 ‘우유 전쟁(Milk Wars)’으로 이어졌다. 법원은 낙농업계의 손을 들어줬지만 오틀리는 재판 과정 전체를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프레임을 짜는 데 성공했고, 오히려 폭발적인 팬덤을 만들었다.
브랜드가 성장하면서 투자 논란과 SNS를 통한 각종 루머 등 여러 비판에 직면했을 때도 오틀리의 대처는 달랐다. 이들은 쏟아지는 비난과 불매운동을 ‘fckoatly.com(엿 먹어라 오틀리)’이라는 자학적인 사이트를 직접 만들어 모두 박제해 버리는 급진적인 투명성으로 돌파했다. 모순과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불완전함을 당당히 전시하는 이 소통 방식은 완벽을 가장하는 기성 기업들에 지친 Z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냈다.



파리 진출 당시 오틀리가 선보인 옥외광고.
광고에 우호적이지 않은 도시 분위기를 역이용해 광고 자체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오히려더큰 주목을 끌었다.





마트 대신 카페를 택한 이유
바리스타 연대와 글로벌 소비문화 창출

확고한 철학과 파격적인 화법으로 무장한 오틀리는 글로벌 시장 진출에서도 유통의 룰을 새로 썼다. 미국 시장 진출에 있어 대형 마트의 진열대를 선점하는 전통적 방식을 버리고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는 독립 카페의 바리스타들을 핵심 오피니언 리더로 삼는 ‘바리스타 우선(Barista-first)’ 게릴라 전략을 구사한 건 대표적인 사례다. 2016년 미국 진출 당시, 미국 시장은 이미 아몬드유가 대체 유제품 시장의 주류인 상태였다. 개념 자체도 생소한 ‘귀리 밀크’를 대형 마트 진열대에 세워 아몬드유와 경쟁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던 것. 오틀리는 커피 거품이 완벽하게 형성되는 전용 ‘바리스타 에디션’을 뉴욕의 트렌디한 카페들에 공급하며 커피 전문가들의 인정을 먼저 받아냈고, 입소문만으로 브랜드를 거침없이 확장했다. 바리스타의 손을 거친 귀리 라테 한 잔이 어떤 광고보다 강력한 브랜드 경험이 됐다.





202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바이크 스루(Bike-Thru)’ 팝업.
오틀리는 자전거도시의 문화를 브랜드 철학과 연결하며 지속가능성을 하나의 경험으로 구현했다.



2018년 중국 진출 시에는 프리미엄 마트에서의 뼈아픈 초기 실패를 교훈 삼아 상하이 중심의 부티크 카페에 집중하는 ‘3-1 전략(하나의 도시, 하나의 채널, 하나의 제품)’으로 재빠르게 궤도를 수정했다. 이 전략을 통해 전통적으로 차(Tea) 문화를 즐기던 중국 시장에 ‘프리미엄 귀리 라테’라는 완전히 새로운 트렌드를 안착시킬 수 있었다. 확고한 브랜드 메시지와 영리한 B2B 연대 전략이 결합한 결과, 오틀리는 폭발적인 재무적 성장을 거듭했고 2021년 약 100억 달러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미국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제품의 질은 이제 상향 평준화된 것이 오늘날 산업계의 현실이다. 그러니 제품이나 기술혁신만으로 기업의 성장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대체 불가능한 브랜딩과 대중과의 소통, 사회적 철학이 더욱 절실해진 이유다. 오틀리가 보여준 것처럼 하나의 제품이 글로벌 라이프스타일이 되는 건 이제 제품 그 자체만큼 메시지를 제대로 던질 줄 아는 브랜딩 능력에 달려 있지 않을까. 오틀리의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소비자는 더 좋은 제품을 사는 게 아니라 더 믿고 싶은 이야기를 산다.







Profile.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 <대중문화 트렌드>,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