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REPORT
NOVEMBER 2025 Vol.248

NOVEMBER 2025 Vol.248

ESSAY

내면에 머무는 시간

글. 강용수



Profile. 강용수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니체 작품의 재구성> 등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누구나 혼자 있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인간의 행복은 얼마나 혼자 잘 견딜 수 있는가에 달렸다”라고 말한다. 내면이 빈약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만 내면이 풍부한 사람은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다. 고독을 얼마나 잘 견디는지는 각자의 능력에 달려 있다.
정신력과 상상력이 충만한 사람은 굳이 자신에게서 도망쳐 다른 사람과 헛된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본래의 모습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고독한 순간에 나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하면 행복감이 찾아온다.
젊을 때는 다른 사람과 쉽게 친해지므로 고독은 ‘뛰어난 정신을 지닌 소수의 운명’이지만 나이가 들어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씩 곁을 떠나면 외로움은 모두가 맞이하게 되는 운명과 같다. 점차 사리 분별 있는 행동을 하게 되는 60대가 되면 자연스럽게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강해진다. 왜냐하면 타인에 대한 착각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면 남과 어울리려는 충동이 그만큼 사그라들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신이 겪은 경험과 성찰, 갈고닦은 지식과 능력 덕분에 사람을 보는 눈이 까다로워진다. 혼자 있을 때 나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고독을 자연스럽게 즐기다 보면 타인과의 불필요한 갈등도 줄어들어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있다.
인간은 저마다 개성과 욕망이 다르므로 타인과 완전히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부딪치며 불협화음을 만든다. 인간이 완전히 하나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따라서 자신의 비밀을 툭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도 나 자신뿐이다.
고독은 마음의 평정과 행복의 원천이며 고독을 견디며 나 자신에게 의지할 때 비로소 나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걸 수 있다. 고독을 견디는 능력이 부족하면 내면의 공허와 권태를 다스리지 못해 타인에게 의지하게 되며 유흥이나 잡담, 사교 모임을 찾게 된다. 고독을 두려워해서 누군가와 함께하려는 생각은 무엇보다 위험하다.
쇼펜하우어는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고독으로 두 가지 이점’을 갖는다고 말한다. 첫째는 ‘자기 자신과 함께한다는 이점’이고, 둘째는 ‘타인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이점’이다. 타인과의 만남에는 많은 강제, 고충, 위험이 뒤따른다. 고뇌가 생겨나기 때문에 만남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내면이 풍부한 사람은 그 자체로 행복하다. 혼자서도 단단히 설 수 있는 사람이 타인과도 잘 지낼 수 있다. 홀로서기가 불가능하면 타인과의 관계도 온전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늘 행복의 내적 원천인 고독의 샘이 고갈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마음의 진정하고 심원한 평화이자 완전한 내면의 평정, 즉 건강 다음으로 중요한 지상의 재화는 고독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으며 철저한 은둔 상태에서만 지속적인 기분을 가질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자아가 크고 풍요롭다면 사막과 같은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가장 큰 행복한 상태를 누릴 수 있다. 고독 속에서 자신의 위대함을 찾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행복을 애써 찾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고독을 진정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위해서도 위대한 사랑을 할 수 있다. 고독은 참된 행복의 오아시스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