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REPORT
OCTOBER 2025 Vol.247

OCTOBER 2025 Vol.247

TABLE TALK

양자기술 선진국에 뒤처진 한국 양자기술 선진국에 뒤처진 한국 틈새 전략과
제조·센싱이 돌파구

양자기술은 이제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 국가는 산업 전략 차원에서 클러스터를 만들고 스타트업을 키우며 상용화를 위한 생태계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국내 양자기술은 아직 기초연구와 산업화 사이에 간극이 있어 생태계 조성과 참여 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 이번 좌담회에서는 국내 양자기술의 현주소와 산업화 가능성, 중소·벤처기업이 이 흐름에 뛰어들기 위한 기회와 과제를 짚었다.

정리. 편집부 사진. 박동균

우리나라 양자기술 수준은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나. 또한 기초연구 성과와 산업화 준비 단계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를 어떻게 보는가?

최호진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4년 ‘글로벌 R&D 전략 지도’에 따르면 한국의 양자통신 표준화 점수는 2.9점으로 미국·중국(약 90점)에 비해 현저히 낮다. 양자 중계기와 센서 등 핵심기술에서도 격차가 크지만 기술이 아직 초기 단계이고 주도적 방식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윤지원양자컴퓨팅 분야만 놓고 보면 아직 글로벌 경쟁에서 두드러진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주요 선도 기업·기관과 비교했을 때 우리 참여가 글로벌 공급망에 큰 변화를 주는 단계는 아니다. 양자통신 분야는 장기간 투자에도 불구하고 시장 개방 속도가 더뎌 눈에 띄는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기초연구 인력도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산업화 기회의 부재를 뜻하지는 않는다. QPU나 알고리즘은 기초연구가 뒷받침돼야 가능하지만 다른 산업화 영역에서는 여전히 역할을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냉정하게 강점과 약점을 진단하고 기회가 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일이다.

김재완전적으로 부정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양자기술을 연구할 기초과학과 공학 수준을 이미 상당히 확보했다. 그러나 대기업의 무관심과 늦은 정책 대응으로 뒤처진 측면이 크다. 다만 몇 년 전부터 정부가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섰고 학계와 출연연구소도 이에 발맞추고 있어 이른 시일 내에 격차를 좁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 차원의 장기 전략을 위해 양자기술의 기초연구와 인프라 확보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할 영역과 연구해야 할 영역은 무엇인가?

김재완양자통신은 국내 통신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상업화와 표준화까지 추진하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양자센싱 분야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영역이다. 다양한 센서에 양자기술을 접목하면 전반적인 양자기술 발전에 큰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최호진한국이 보유한 반도체 공정 기술과 제조 역량을 활용해 큐비트 소자 영역, 전자 제어 시스템을 위한 부품 및 장비, 광통신 인프라 기반의 양자암호통신 서비스 시장에 전략적으로 진출할 수 있다. 한국 제조업의 강점을 활용해 양자기술 구현에 필요한 초정밀 부품을 제조 및 공급하는 역량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양자기술 발전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 국내 기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급변하는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법·제도적 정비를 통해 대비해야 할 핵심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최호진양자컴퓨터의 발달은 기존 공개키 암호를 무력화해 디지털 보안을 위협할 수 있다. 특히 암호화된 데이터를 먼저 탈취한 뒤 미래에 양자컴퓨터로 해독하는 HNDL(Harvest Now Decrypt Later) 공격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양자내성암호(PQC) 구축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미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양자컴퓨터가 적국에 넘어가면 공개키 암호로 보호된 비밀키와 정보가 모두 유출될 것”이라 경고하며 이에 대비해 PQC 알고리즘을 준비해왔다. 우리 역시 양자컴퓨터 상용화 이전에 PQC를 선제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김재완세계적으로 연구 인력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유럽과 미국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글로벌 인재를 적극 유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외국 인재가 쉽게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출입국·비자 제도를 유연하게 운영하고 국제 공동연구와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윤지원국가 산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글로벌 협력이 필수적이며 틈새를 공략하는 전략이 효과적이다. 해외 주요 기업들도 자국 내에서 모든 양자 장비를 해결하기 어려워하는 만큼 우리나라가 강점을 발휘할 기회가 있다. 산업이 초기 단계인 지금은 모든 기업을 지원하기보다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을 선별해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세제 혜택이나 보조금 같은 정책적 수단을 병행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다.

국내외 유망 중소·벤처기업 사례 가운데 양자기술을 활용해 눈에 띄는 성과를 낸 비즈니스 모델이나 전략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윤지원우리 SDT는 해외 기업 및 기관과 합자회사 형태로 협력하며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초전도 QPU 기업과는 양자컴퓨터의 전체 제조를 한국에서 수행하는 모델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또한 동남아시아 국가의 국영 기업과는 ODM(제조업자 개발생산) 방식으로 협력해 SDT가 제조한 양자 장비를 현지 파트너의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한 채 공급하는 맞춤형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방산 기업과도 유사한 형태로 사업을 확대 중이다. 이러한 방식은 원청 기업의 지식재산권(IP)과 브랜드를 존중하면서 그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제조 역량을 제공해 함께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다.

최호진캐나다의 양자컴퓨팅 기업 디웨이브(D-Wave)는 폴크스바겐과 BMW의 공급망을 최적화하고, 패티슨푸드그룹(PFG)에는 배송 기사 스케줄링 자동화 솔루션을 제공해 주간 업무 시간을 80% 단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처럼 양자 어닐링 기술은 복잡한 조합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데 강점을 보인다. 한편 아이온큐(IonQ), 큐에라(QuEra), 아톰 컴퓨팅(Atom Computing) 등 스타트업은 초전도 방식과 달리 이온트랩·중성원자 플랫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김재완핀란드는 초전도 양자컴퓨터용 냉각기 시장의 95%를 점유하며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중소기업들도 자신들이 보유한 전문 기술이 양자기술 분야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기회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양자’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느껴져 접근조차 안 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양자기술은 전혀 새로운 영역이 아니라 기존에 알려진 기술적 기반 위에서 발전하는 것이므로 기업들이 가진 기술을 고도화해 양자 분야에 접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 차별화된 전략을 마련하고, 어떤 형태의 클러스터를 조성해야 한다고 보는가?

김재완앞서 언급된 국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 전략 차원에서 양자기술에 대한 투자를 이어왔다. 우리나라도 이제 본격적으로 국가적인 투자를 시작한 만큼 역량을 집중해 나가야 한다. 다만 한정된 자원을 여러 집단에 배분하는 방식이 아니라 양자기술이 실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선별적이고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하드웨어 분야는 효율성을 면밀히 따져 투자해야 하며 이론이나 소프트웨어·알고리즘 분야는 시공간적 제약이 크지 않으므로 연구 특성에 맞게 유연하게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윤지원현재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우리는 중국과 차별화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중국이 생산 거점을 독점하지 않으면서 우리에게도 새로운 역할을 모색할 기회가 열렸다. 아울러 승산이 낮은 분야에 무리하기보다 강점을 가진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의 적극적 투자와 지원 역시 필요하며 이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과감하게 성장 기회를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최호진전한국의 양자 커뮤니티는 아직 작지만 성장 잠재력이 있으며 글로벌 커뮤니티와의 융합이 필요하다. 유럽처럼 여러 국가가 협력하는 사례를 참고해 한국도 일본·미국 등과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한다. 반도체 공정 기술과 KAIST의 광학 연구 같은 강점을 활용하면 해외 연구팀과의 협력, 인재 교류, 커뮤니티 형성이 원활해질 수 있다. 양자기술은 초기 단계이므로 글로벌 커뮤니티가 함께 발전시킬 가능성이 크며 IBM 퀀텀 네트워크 같은 협력 모델에 주목해 기업·대학·연구기관이 지식을 공유하고 공동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

산업화를 앞당기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최호진큐비트 안정화, 극저온 유지, 오류 정정 등 핵심 원천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유의미한 활용 사례를 발굴하고 상업적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양자기술은 일상적 문제 해결에는 미치지 못했기에 실질적 비즈니스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사례를 찾는 노력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양자컴퓨터 개발 기업과 사용자 기업 간의 도메인 지식 격차를 줄이고 문제 제시와 기술 제공을 기반으로 한 협력 연구가 필요하다.

윤지원각 국가·기업·기관의 강점과 약점을 면밀히 진단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집중할 기회를 명확히 규정하는 일이다. 과학자들의 조언과 비전을 경청하되 냉정한 현실 분석을 바탕으로 균형 있게 판단해야 한다. 과학적 성과가 곧바로 산업적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향후 5~10년 내 어떤 분야에서 산업적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보는가?

윤지원우리의 기회는 결국 초정밀 제조 역량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과 EU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제조가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가능하며 이 제조 기반을 국가적으로 보호하고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선진국이 우리에게 의존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분야도 제조다.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신뢰받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한다면 양자 산업은 물론 다른 첨단 산업에서도 협상력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김재완양자센싱은 다품종 소량 생산에 적합한 동시에 양자기술 전반의 기반이 되는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 분야이므로 적극적인 과제 발굴이 필요하다. 또한 양자 인터커넥트 기술은 양자컴퓨터 확장은 물론 양자인터넷이나 양자센싱망 등에도 응용될 수 있다. 아직 연구가 초기 단계인 만큼 우리가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연구해 선도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호진반도체, 전자, 통신 인프라 등에서의 강점을 토대로 국제 민주주의 진영의 양자 생태계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양자컴퓨터 밸류체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중심으로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전자·광학 부품과 같은 분야에서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활용한다면 미국과 유럽 등의 주요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는 부분을 효과적으로 보완하며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