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REPORT
OCTOBER 2025 Vol.247

OCTOBER 2025 Vol.247

SPECIAL ①

제약-통신 등 산업 전반
양자혁명發 기회 열린다

양자기술은 더 이상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당면한 산업의 과제가 되고 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양자컴퓨팅, 통신, 센서 기술을 앞다퉈 상용화하며 새로운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산업 역시 도전에 직면하는 동시에 이를 기회로 삼아 도약할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글. 최민철

Profile. 최민철
-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 KAIST 경영공학 박사
- POSTECH 물리학 학사

양자 혁명,
산업 지형을 바꾸는 두 번의 물결

20세기 초, 기존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양자역학이 등장했다. 에너지와 운동량이 연속이 아닌 불연속 값으로 존재한다는 ‘양자화’ 개념에서 출발해 입자-파동 이중성·중첩·얽힘 같은 원리가 미시세계를 설명하는 틀이 됐다. 직관적으로는 난해하지만 실험적으로 입증되며 현대 과학기술의 기초가 마련됐다.
이후 20세기 중반, 양자 현상의 응용이 본격화하면서 제1차 양자혁명이 전개됐다. 반도체 소자, 레이저 같은 발명은 전자와 광자를 제어하는 하드웨어 기술을 열었고 컴퓨터·스마트폰·광통신망 등 오늘날 정보화 사회의 기반이 됐다.
20세기 후반부터는 개별 양자 상태를 직접 제어하고 정보 단위로 활용하는 가능성이 부상했다. 양자 알고리즘과 시뮬레이션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실제 구현 기술이 발전하며 제2차 양자혁명이 본격화했다. 양자 정보의 생성·처리·전송이 가능해지며 양자컴퓨팅, 양자통신, 양자센싱 등 새로운 응용 영역이 산업의 미래를 열고 있다.



양자기술이 여는
보안·연산·계측의 미래

양자컴퓨팅은 정보처리를 위해 기존 컴퓨터가 0과 1의 비트(bit)를 기본 단위로 연산하는 것과 달리 중첩·얽힘과 같은 양자역학적 원리에 기초한 큐비트(qubit)를 활용하는 기술이다. 큐비트를 활용하면 다수의 정보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전통적인 슈퍼컴퓨터로는 수백, 수천 년 이상 걸릴 문제를 단기간에 풀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현재 큐비트를 구현하는 방식에 따라 초전도, 중성원자, 이온트랩, 광자 등 다양한 방식의 양자컴퓨터가 개발되고 있으며 아직까지는 어떤 방식의 양자컴퓨터가 승자가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양자컴퓨팅의 잠재력은 병렬계산과 최적화가 필요한 영역에서 두드러지기 때문에 산업의 다양한 부문에서 혁신을 촉발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양자컴퓨팅이 본격 상용화되면 제약·바이오산업에서는 임상 전 실험 단계에서 신약후보물질을 빠르게 발굴할 수 있고 소재·화학산업에서는 전자구조 계산을 통한 신소재 개발 속도를 비약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금융산업에서는 포트폴리오 최적화와 리스크 분석이 고도화돼 초고속·맞춤형 투자 전략이 가능해지고 제조업과 물류에서는 복잡한 공급망의 최적화가 실현될 수 있다. 나아가 인공지능의 학습 속도와 정확도를 제고해 산업 전반의 데이터 활용 패러다임을 바꿀 가능성도 있다.
양자통신은 양자 상태의 중첩과 붕괴 같은 양자적 현상을 활용해 도청을 탐지함으로써 기존 암호화 기술로는 달성할 수 없는 절대적 보안성을 확보하는 새로운 통신 기술이다. 이를 활용한 대표적인 방식인 양자키분배(QKD, Quantum Key Distribution)는 1980년대에 이미 이론적 가능성이 제기됐고 양자 상태 제어 기술의 발전에 따라 현재 빠른 상용화의 진전을 보이고 있다. 양자통신 기술은 향후 단순한 QKD 응용을 넘어 인공위성, 광섬유, 중계 노드를 연계해 전 지구적 규모에서 양자정보를 전송·공유하는 양자인터넷으로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자통신, 양자인터넷의 상용화는 곧 초보안 네트워크의 구현을 뜻한다. 이를 통해 군사·외교·금융과 같이 보안이 핵심인 분야에서 안보를 근본적으로 강화할 수 있으며 민간 영역에서도 금융 거래, 의료 데이터, 지적재산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보안성을 갖춘 혁신적인 서비스가 창출될 수 있다. 또한 양자통신 기술은 분산형 양자컴퓨팅, 양자센서 네트워크와도 긴밀히 연계돼 차세대 응용 생태계를 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양자센싱은 원자나 이온, 초전도체, 다이아몬드 내 질소-공석 결함(NV center) 등 양자계가 외부 물리량(자기장, 전기장, 중력 등)의 미세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활용해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초고감도·초정밀 계측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이를 활용한 정밀 측정은 생명·의료, 군사·안보, 지구환경 탐사, 우주·항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잠재력을 지닌다.



글로벌 퀀텀 주도권을 향한
주요국의 전쟁

미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양자기술 관련 법안인「국가 양자 이니셔티브(NQI) 법」을 제정해 글로벌 양자기술 정책을 선도하고 있다. 2022년에는 「반도체와 과학법」을 제정하고 양자기술을 경제 안보와 관련된 핵심기술로 포함했고 이후 양자기술 관련 장비 및 부품에 대한 글로벌 공급망을 추적하면서 대외 투자 제한과 수출 통제를 시행하는 등 적극적인 대중국 견제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견제에 맞서 양자통신 분야의 경쟁력을 양자기술 전반으로 확대하고 글로벌 양자기술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 주도의 막대한 투자와 자국 중심의 양자 역량 확보에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18년부터 양자기술 전반을 종합하는 대규모 이니셔티브인 양자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고 2023년에는 범유럽 양자 생태계 구축을 위한 EU 양자기술 선언문을 발표했다.
일본은 2020년 양자기술 혁신전략 수립 이후 중장기적 관점의 도전적·파괴적 혁신 성과 창출에 집중하고 있으며 영국과 캐나다 또한 기술 역량 확보와 민관 협력에 기반한 상용화 촉진을 위한 국가 양자전략을 발표했다.



양자 생태계,
산업 전반으로 확장되는 기회

한국은 미국, 중국과 같은 주요국에 비해 기술 역량, 공공투자 규모, 생태계 성숙도 등 여러 측면에서 전반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놓여 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즉 우리에게는 단순한 추격형 전략을 넘어 우리만의 강점을 극대화하고 주요국과는 차별화되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기업과 산업은 양자 산업 활성화 기술을 포함한 넓은 생태계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양자기술의 구현에는 큐비트 생성 및 상태 유지를 위한 냉각기술, 극저온에서 동작하는 반도체, 소자 제작을 위한 반도체 공정 기술 등 다층적인 활성화 기술이 필요하다. 즉 양자 생태계는 양자기술 구현을 위한 소재, 부품, 장비 등이 기존 산업기술과 복합적으로 연계돼 구성되며 이에 따라 양자기술의 본격적인 상용화 과정에서 활성화 기술과 관련된 기업들의 역할은 확대될 것이다. 즉 양자산업의 기회는 당장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
정부는 기업들이 양자 생태계에 조기 편입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전략적 지원과 협력 플랫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양자기술은 상용화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투자에 대한 즉각적인 경제적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양자기술의 상용화는 기업, 대학, 연구소들만으로는 해낼 수 없으며 초창기 생태계 형성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통적인 연구개발 지원정책 프레임워크를 넘어 도전적·파괴적 연구개발을 지원할 수 있는 혁신 체계를 마련하면서 산학연 전반에 우수한 양자 전문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처럼 근본적 대책이 병행될 때 양자기술의 시대에 새로운 기회를 열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