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의 반란,
중고 시장의 매력
‘낡은 것’, ‘버려지는 것’으로 여겨졌던 중고 물품이 이제 투자 자산이자 패션, 취향, 지속 가능성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되팔 수 있는가’는 소비자의 구매 결정 기준이 됐다. 단순한 중고 거래를 넘어 새로운 소비 문화를 이끄는 조용한 반란이 된 것. 국내외 리세일 시장은 어떻게 진화하고 있으며, 그 매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글. 박지현
Profile. 박지현
- 전남대학교 문화전문대학원 교수
- <문화트렌드 2025> 공저
“당근이세요?” 집 앞에서 물건을 주고받는 동네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은 중고 거래를 익숙한 일상으로 만들었다. Z세대는 물론 40~50대 부모 세대까지, ‘당근’은 쓰지 않는 물건을 정리하고 필요한 물건을 저렴하게 구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예전엔 누군가 중고 제품을 샀다고 하면 “형편이 안 좋나?”라는 편견이 따르곤 했지만 이제는 “그걸 그렇게 싸게 구했어?”라는 부러움이 먼저 나온다. 한정판 스니커즈, 명품 핸드백, 빈티지 오디오까지. 리세일은 절약을 넘어 취향, 가치, 실용을 모두 만족시키는 소비로 자리 잡으면서 ‘힙한 소비’의 상징이자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의 표현 수단이 됐다.
리세일로 통하는 요즘 소비
리세일(Resale) 혹은 리커머스(Recommerce)라고 불리는 이 시장의 역사는 길다. 중고품 매장의 원조 격인 구세군 매장에서부터 1990년대 말 등장한 이베이까지, 사용하던 물건을 다시 유통하는 문화는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국내에서는 2003년 개설된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가 중고 거래의 대중화를 이끌며 현재는 1,950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초대형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2025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궜던 인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중고나라에서 분청사기를 거래하려는 사기꾼을 잡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글로벌 중고 패션 시장은 2025년부터 3년간 연평균 48.7%의 고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일반 패션 시장의 6배에 달하는 수치다. 국내 역시 비슷한 흐름으로 시장조사 업체 스태티스타는 2027년 국내 중고 의류 시장 점유율이 전체의 24.3%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급성장의 배경에는 환경에 대한 인식 변화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제품을 버리지 않고 다시 쓰는 순환 소비는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선택으로 주목받고 있다. 리세일은 이제 ‘절약’이 아닌 ‘윤리적 소비’의 대표적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인플레이션과 경기 불확실성 속에서 소비자들이 불필요한 물건을 현금화하고, 합리적인 가격에 원하는 제품을 구매하는 실속형 소비 전략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술 발전은 이러한 리세일 시장의 성장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그동안 온라인 기반 중고 거래는 사기, 허위 상품, 정품 여부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신뢰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술의 발달과 플랫폼의 고도화를 통해 이러한 장벽이 빠르게 해소되고 있다. AI 기반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검색 이력과 구매 성향을 분석해 선호도 높은 상품을 정밀하게 매칭해주고 에스크로 기반의 안전 결제 시스템은 거래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상품 상태 검수, 정품 인증, 실시간 상담, 픽업·배송 대행까지 제공하는 전문 리세일 앱이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은 직접 만나지 않고도 신뢰할 수 있는 거래를 경험하게 됐다.
소비 트렌드 리세일에 흐름 탄 브랜드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브랜드들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명품 브랜드들은 리세일 시장을 브랜드 관리와 수익 확대의 전략적 채널로 인식하고 접근하고 있다. 롤렉스는 2022년 말부터 ‘정품 인증 서비스(CPO, Certified Pre-Owned)’를 도입해 리세일 과정에서의 가품 논란을 차단하고 브랜드 이미지와 가격 체계를 직접 통제하기 시작했다. 까르띠에와 IWC, 몽블랑을 보유한 리치몬트그룹은 중고 시계 전문 플랫폼 ‘워치파인더’를 인수해 자체 유통망을 구축했고, 버버리와 구찌는 미국의 ‘더리얼리얼’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리세일 시장 참여를 공식화했다. 이는 단순한 이미지 보호를 넘어 리세일 시장에서의 수익 확보와 고객 생애주기 관리까지 아우르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변화는 국내 패션업계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무신사는 기존 고객층을 대상으로 한 중고 거래 플랫폼 ‘무신사 유즈드(MUSINSA USED)’를 2025년 하반기 정식 론칭할 예정이며 LF는 자사 몰 기반 리세일 마켓을 준비 중이다. 코오롱FnC는 이미 ‘OLO 릴레이 마켓’을 통해 브랜드 전용 리세일 생태계를 조성하며 순환형 플랫폼을 구축했다. 기존 신상품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이 성장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기업들은 리세일을 통해 지속가능성과 브랜드 충성도, 고객 경험 확대를 동시에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중고 패션 유통의 확대는 패션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10%를 차지하는 패션 산업에서 과잉 생산과 폐기물 문제는 오랫동안 지적돼 온 고질적 과제다. 중고 유통은 자원 순환 구조를 통해 낭비를 줄이고 탄소 저감 효과를 통해 ESG 실천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적 가치가 더욱 커지고 있다.
중고 소비는 더 이상 ‘아껴 쓰는’ 소비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개인의 취향과 철학을 드러내는 하나의 정체성 소비로 자리 잡았고 디지털 플랫폼과 소셜미디어의 확산 속에서 브랜드와 소비자가 가치를 공유하는 새로운 접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리세일 마케팅은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문화와 기술, 경제와 윤리가 만나는 새로운 소비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브랜드 역시 소비자와 함께 ‘스토리 있는 소비’를 설계하는 공동 창작자로 진화하고 있다. 요컨대 리세일은 이제 틈새시장을 넘어서 지속가능성과 감성, 기술이 결합된 유통 전략으로 주류 산업에 안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빠르게, 더 깊이 소비 문화와 유통 전략을 재편한다. 중고라고 낡았다고 보지 않는 시대, 이제 ‘가치’와 ‘스토리’를 담은 상품만이 살아남는다. 당신은 어떤 가치를 사고파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