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고 싶은 욕망
글. 강용수
Profile. 강용수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니체 작품의 재구성> 등
인간은 혼자 고립돼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다. 어릴 때부터 늘 타인의 평가를 받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평가를 받아야 하며, 직장에서는 상사의 고가 점수에 의존하며, 가족을 이루면 구성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이렇게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쇼펜하우어가 예시로 든 사형수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죽기 전날 면도를 하고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인간의 심리. 사형장에서 처형되는 순간에도 타인의 눈에는 멋진 모습으로 각인되고 싶은 마음이 ‘허영심’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들어보겠다. 죽음을 앞두고 많은 사람은 자신의 장례식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올까, 조의금은 얼마나 회수될까, 나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죽은 ‘나’에 관해 뒷담화를 하지 않을까 괜한 걱정에 사로잡힌다. 시한부 환자들에게 물어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시 태어나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살고 싶다는 소망을 말한다. 우리는 내가 나 자신의 욕망과 의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라는 걱정에 평생을 조바심과 걱정 속에 살아간다.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 타인에게 더 잘 보이려는 바탕에는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자존감이 숨어 있다. 즉 인정받고 싶은 마음의 뒷면에는 자신이 끝까지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속담처럼 인간에게는 명성과 명예가 목숨보다 중요할 때가 있다. 언뜻 비슷한 것 같지만 명예와 명성은 다르다. 명예는 높은 관직이나 직업을 가지면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명성은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명성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라서 많은 사람이 고개를 들어 올려봐야 하는 희귀한 것이다. CEO로 성공하면 저절로 명예가 따르지만 명성은 그렇지 못하다. 또한 명예는 살아서 누리지만 명성은 죽고 나서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 명예나 명성은 둘 다 타인의 평가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나의 노력으로 쉽게 얻을 수 없다. 살아 있을 때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아서 출세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죽은 후에도 나의 명성이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은 확인할 수 없는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말고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긍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타인의 좋은 소리에 휘둘리다 보면 자신만의 진정한 존재 의미를 잃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별 관심 없는 사람의 호불호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정해진다면 삶의 주도권을 갖지 못한다. 출세와 성공, 인지도가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타인의 평가에 의해서만 살아가는 것은 노예와 같은 비굴함을 느끼게 한다. 중요한 것은 아부를 통해 얻는 나에 대한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할 때 내 배의 선장은 자신이라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삶의 방향을 정하는 나침반을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