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 이후 흔들리는
AI 패권의 무게중심
‘빠르고, 싸고, 누구나 쓸 수 있는 AI.’ 딥시크V3는 기존 패권 구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25년 인공지능(AI) 생태계는 성능 경쟁에서 속도·비용·확산력의 경쟁으로 전환 중이다. 2024년 12월 26일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공개한 ‘딥시크V3’ 모델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AI 생태계 전체에 전방위적인 충격파를 던졌다. 그리고 이 새로운 기준은 실제 글로벌 AI 진영의 전략 재편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글. 김성봉
Profile. 김성봉
-BCG코리아 AI·디지털부문 파트너
구글 최고경영자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는 “최근 18개월 새 구글의 AI 모델 이용료가 97% 감소했다”라며 “머지않은 미래에 인공지능이 공기처럼 싸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월 27일 딥시크 쇼크 이후 미국 빅테크는 경쟁적으로 저가 전쟁에 뛰어들었고, 중국의 또 다른 스타트업 모니카는 AI 비서 마누스를 출시했다. 3월 18일 LG는 자체 개발한 추론 AI ‘엑사원 딥’을 출시했다. 한국 기업들에 딥시크의 등장은 위기이자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딥시크가 가져온 변화와 전망, 한국 기업들의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
‘임계점’ 넘은 딥시크V3:
성능 아닌 구조의 전환
딥시크V3는 최대 6,71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MoE(Mixture of Experts) 구조1를 채택했으며 추론 시 활성화되는 파라미터 수를 약 370억 개로 제한해 높은 효율성을 구현했다. 이 모델은 처음부터 세계 최대 인공지능 플랫폼인 미국의 AI 스타트업 허깅페이스를 통해 자유롭게 다운로드할 수 있는 오픈 웨이트 모델2로 제공됐고 2025년 3월부터는 MIT 라이선스로 전환되며 상업적 사용까지 허용됐다. 딥시크V3 이전에 출시된 모델들과 비교해도 딥시크V3는 몇 가지 핵심 측면에서 분명한 차별성을 가진다. 첫째, 성능 수준이다. 라마(LLaMA) 3, 팰컨(Falcon) 2 등 최신 오픈 모델들이 GPT-3.5를 뛰어넘는 성능을 보이긴 했지만 딥시크V3는 MMLU, GSM8K, HumanEval 등 주요 벤치마크에서 GPT-4 turbo는 물론 일부 항목에서는 GPT-4o와도 유사한 점수를 기록했다. 둘째, 라이선스와 활용 범위다. 딥시크V3는 2025년 3월부터 MIT 라이선스를 채택하며 사전 승인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상업적 활용이 가능하도록 조건을 전환했다. 이는 연구용을 넘어 실질적인 서비스 배포와 산업 적용의 문턱을 크게 낮춘 조치였다. 셋째, 배포 방식과 접근성이다. 일부 모델은 신청 또는 사용 조건 동의 후 다운로드가 가능한 구조이지만 딥시크V3는 허깅페이스에서 사전 승인 없이 누구나 즉시 다운로드 가능해 연구자나 기업 개발자들이 테스트·적용까지의 진입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넷째, 추론 효율성과 비용 구조다. 딥시크는 MoE 구조를 통해 추론 시 일부 전문가 노드만 활성화함으로써 전체 모델 규모에 비해 연산 비용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는 추론 지연을 줄이면서도 고성능을 유지하는 데 유리한 구조로 FP8 혼합 정밀도와 다중 토큰 예측 방식을 통해 실시간 대화 응답 성능을 향상시켰다. 이러한 기술적 특성은 GPT-4o와 유사한 수준의 응답 속도를 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처럼 딥시크V3는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라 “누가 AI를 만들고, 누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변화의 신호탄을 던진 사건이었다.
파운데이션 모델의 주도권,
국가로 이동하는가
딥시크V3는 단지 기술 트렌드의 반영이 아닌 주요 국가들이 AI를 ‘전략 자산’으로 다루는 현실을 앞당긴 계기로 작용했다. 특히 AI 주권 확보를 핵심과제로 삼고 있는 국가 주도 진영(중국, 아랍에미리트, 유럽 등)은 딥시크 이후 대응 속도와 야심 모두에서 분명한 변화를 보인다. 중국의 알리바바는 2025년 1월 29일 Qwen 2.5 Max 모델을 공개했다. 이 모델은 딥시크V3와 오픈AI GPT-4o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이들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임을 강조했다. 이례적으로 대규모 언어모델을 두고 글로벌 비교를 공식화한 것은 중국이 딥시크 이후의 AI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의 바이두는 2025년 3월 Ernie X1을 출시하며 반격에 나섰다. 이전 세대인 Ernie Bot 4.0에 비해 성능 향상은 물론 추론 속도 및 다국어 처리 성능에서 개선된 것으로 평가되며 오픈AI 대비 성능이 80%까지 접근했다는 내부 평가가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이미 팰컨 180B를 오픈한 바 있으며 이후 후속 모델 개발보다 팰컨을 자국 산업에 내재화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교육, 군사, 의료 등 특정 분야에 특화된 산업 맞춤형 파인튜닝(Vertical Fine-tuning) 생태계를 조성 중이며 이는 고유의 데이터를 학습한 자국형 모델을 구축해 나가겠다는 AI 자립의 연장선이다. 유럽에서는 알레프알파(Aleph Alpha, 독일), 미스트랄(Mistral, 프랑스)을 중심으로 유럽형 오픈 모델 전략이 모색되고 있다. 특히 2025년 3월부터 유럽연합 인공지능법이 부분 발효됨에 따라 대형 언어모델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규제적 흐름과 자체 기술 확보가 동시에 추진되는 중이다.
새로운 경쟁의 3 요소:
싸고, 쉽게 쓰이고, 다르게 작동하는 AI
딥시크 이후 AI 경쟁의 핵심 요소는 더 이상 파라미터 수나 벤치마크 점수가 아니다. 이제 진짜 경쟁은 ‘얼마나 싸게 만들고, 얼마나 쉽게 쓰이며, 얼마나 다양하게 적용 가능한가’로 옮겨가고 있다. 첫째는 비용효율성이다. 딥시크V3 오픈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추론 지연(Inference Latency)3 부분은 GPT-4o와 유사한 수준의 실시간 응답성을 구현해 냈다. GPT-4o 역시 2024년 5월 출시 당시 과거 GPT-4 turbo보다 50% 더 빠르며 API 가격은 2배 이상 저렴하다는 발표로 시장 반응을 이끌었다. 같은 해 6월 발표된 Claude 3.5 Sonnet 역시 성능 대비 단가 절감이 특징이었다. 둘째는 접근성이다. 미스트랄, 팰컨, 라마 시리즈처럼 오픈 웨이트 모델이 확대되면서 개발자와 중소기업도 AI 모델을 활용한 자체 서비스를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됐다. 허깅페이스, 레플리케이트 같은 플랫폼에서는 코드 몇 줄만으로 대형 언어모델을 실행할 수 있는 ‘Front-ready’ 생태계가 마련됐다. 이 흐름에서 딥시크V3의 등장은 오픈 모델 시장의 신뢰도를 한층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셋째는 응용 가능성(범용성)이다. 딥시크는 영문 기반 모델임에도 문장 구조와 응답 정확도 면에서 다국어 대응 가능성을 입증했고 의료상담, 법률 요약 등 실제 산업 접점에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특히 구조적으로는 모델 한 개로 모든 용도를 처리하겠다는 기존의 GPT식 통합 전략에서 벗어나 특정 산업을 위한 세분된 파인 튜닝(Fine-tuning)4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이는 응용의 방향이 ‘범용모델 기반 특화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같이 딥시크V3는 지난 1월 공개 즉시, 산업용 지능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성능과 라이선스구조를 갖춘 모델임을 직시했다. 이것이 다른 AI모델과 차별화된 점이다.
구글이 지난 4월 9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한
‘구글 클라우드 넥스트 2025’에서 성능과 비용, 효율성에서 강점을 지닌
새로운 AI 모델 ‘제미나이 2.5 플래시’를 발표했다.
딥시크 이후,
AI는 더 이상 기술이 아니다
딥시크V3는 단순히 하나의 오픈 모델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AI를 ‘기술적 진보’로만 바라보던 관점을 뒤흔든 질서 전환의 촉매제였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성능 수치나 파라미터 개수가 아니라 그 모델이 얼마나 빠르게 배포되고, 얼마나 손쉽게 쓰이며, 얼마나 많은 산업과 사회에 연결될 수 있느냐다. 이 변화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제품’에서 ‘인프라’로 전환하고 있다. 하나의 연구 결과물로 시작된 모델들은 이제 전 세계 기업과 정부가 정책, 산업 전략, 사회 시스템에 통합하려는 디지털 기반 구조로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누가 이 인프라를 통제하고, 누가 그 위에 플랫폼을 만들며, 누가 그 속도를 따라잡느냐가 새로운 경쟁의 초점이 되고 있다. 딥시크는 미래가 아니다. 예정보다 앞당겨 도착한 미래다. 성능 중심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지금은 배포력과 현장 적응력의 시대다. 우리는 기술을 만들 것인가, 기술에 끌려갈 것인가. 딥시크 이후의 AI는 그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