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스토어2.0시대:
융합 팝업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연도별 팝업스토어 검색량이 2016년 대비 2023년, 486% 증가했다. 지금도 어딘가에선 팝업스토어를 ‘체험’하기 위한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성수동, 여의도를 넘어 대구, 부산 등으로 지역 범위도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 한때뿐일 것이라던 팝업스토어는 이제 하나의 문화이자 필수 마케팅 전략이 됐다.
글. 조명광
Profile. 조명광
- 디트리스 대표
- <잘 팔리는 팝업스토어의 19가지 법칙>
<마케팅 무작정 따라하기> 등
‘팝업스토어(Pop-up Store)’는 인터넷 팝업창처럼 예고 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며 특정 브랜드가 정해진 기간만 문을 여는 일시 매장을 가리킨다. 팝업스토어의 기원은 약 20년 전으로 올라가는데 2002년 미국 대형 할인 마트 타깃(Target)이 뉴욕에서 짧게 연 임시 매장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이 시초로 알려져 있다. 이후 여러 기업이 이를 벤치마킹하면서 현대적인 팝업스토어 형태가 확산된 것이다. 이러한 비정기 시장들은 상인과 소비자가 만나 새로운 상품을 시험하고 거래하는 장으로 기능하며 팝업스토어의 근간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융합 팝업의 등장:
정의와 기존 팝업과의 차별성
팝업스토어 열풍 속에서 최근에는 한 단계 진화한 ‘팝업스토어2.0’, 일명 ‘융합 팝업’ 현상이 부상하고 있다. 융합 팝업이란 두 가지 이상 이질적인 요소를 융합한 팝업스토어를 의미한다. 전통적인 팝업스토어가 한 브랜드의 제품을 짧은 기간 홍보·판매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융합 팝업은 업종 경계를 허물거나 여러 브랜드가 협업해 복합적인 경험 공간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기업과 제품의 경계를 없앤 형태로 한 기업이 본업과 전혀 다른 콘셉트를 결합하거나 여러 기업, 브랜드가 함께 참여하는 팝업스토어를 가리킨다. 융합 팝업에서는 브랜드의 주력 상품조차 등장하지 않는 파격적인 연출도 흔하다. 판매보다는 브랜드 이미지 각인과 새로운 고객층 확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또한 이벤트, 전시, F&B, 공연 등 여러 분야의 요소를 한데 결합해 몰입형 체험 공간을 구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종 산업 간 컬레버레이션을 통한 시너지효과도 노린다. 서로 다른 업계의 브랜드들이 힘을 합쳐 팝업을 열면 각자의 고객층 교차 유입이 일어나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콘텐츠로 화제가 된다. 이는 브랜드 홍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융합 팝업 부상의 사회·문화·산업적 배경
융합 팝업이 트렌드로 떠오른 데는 사회문화적 변화와 산업 환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소비자 측면에서 MZ세대를 중심으로 경험 소비를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물건 그 자체보다 브랜드 경험과 스토리를 소비하려는 성향이 짙어지면서 기업들도 제품이 아닌 경험을 ‘선물’하는 공간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또한 SNS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성향도 한몫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인스타그램 등에서 공유 가치가 높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이종 분야를 결합한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전략이 각광받고 있다. 팬덤 문화의 확산 역시 배경 요소로 볼 수 있다. 게임, 음악, 캐릭터 등 열성 팬덤을 거느린 IP(Intellectual Property)와 협업하면 팬심을 자극해 자발적 홍보와 방문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융합 팝업 형태의 브랜드 컬레버레이션이 더욱 활발해지는 추세다. 산업적 배경으로는 우선 유통·부동산 환경의 변화를 들 수 있다. 팝업스토어의 인기 덕에 건물주는 유휴 공간이나 공실을 단기 임대해 수익을 얻고, 기업은 장기 임대 계약과 유지비 부담 없이 도심 핫플레이스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의 성수동, 한남동 등지에 팝업이 활발한 이유도 임시 임대가 수월해진 환경 덕분이다. 비용 장벽이 낮아지면서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폭넓게 팝업스토어에 도전하게 됐고 경쟁이 치열해지자 더 눈에 띄는 기획이 필요해졌다.
이 과정에서 이색 컬레버와 융합 콘셉트가 차별화 포인트로 부상한 것이다. 실제로 팝업스토어 난립으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특별한 연출이 없으면 소비자들의 기억에 남기 어려워지자 상대적으로 자원이 적은 브랜드들은 협업을 통한 공동 팝업이나 독특한 테마 결합으로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융합 팝업의 증가는 과열 경쟁 속 생존 전략으로서의 측면도 있는 것이다. 추가로 팬데믹 기간 디지털 경험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에게 현실과 가상을 연결 짓는 새로운 체험을 제공하거나 집콕 생활로 지친 이들에게 복합 문화공간을 제공하려는 시도가 늘었다. 또한 전통 강자들의 젊어지기 전략도 주목된다. 오래된 제조업·금융업 기업들이 MZ세대와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과감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면서 익숙한 자기 영역 밖으로 넘어가 낯선 조합을 시도하는 융합 팝업이 늘어난 것이다.
마지막으로 간과할 수 없는 배경은 지속가능성에 대한 요구이다. 팝업스토어의 단기성 때문에 발생하는 각종 폐기물 문제가 대두되면서 일회성 이벤트라도 환경친화적으로 기획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폐자재를 최소화하고 모듈형 인테리어로 재활용성을 높이거나 이동식 트럭 매장처럼 흔적을 덜 남기는 형태의 팝업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러한 변화 역시 업종 간 장벽을 허물고 유연한 팝업 형태를 모색하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
융합 팝업의 미래 전망과
소비 트렌드 변화
전문가들은 팝업스토어 열풍이 당분간 지속되는 가운데 융합 팝업 형태로 더욱 진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여러 브랜드가 연합해 하나의 팝업 공간을 구성하는 ‘편집숍형 팝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개별 브랜드가 단독으로 대형 팝업을 운영하기에는 부담이 커지는 현실에서 협업을 통해 비용 부담을 나누고 콘텐츠를 풍부하게 하기 위한 방향이다. 실제로 최근 패션 브랜드들이 협업해 공동 팝업 행사를 열거나 지역 기반 소상공인들이 테마를 묶어 편집 팝업 마켓을 여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어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싣는다. 온·오프라인 융합도 한층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의 팝업스토어는 AR/VR 기술을 접목해 증강현실 체험을 제공하거나 메타버스 연동 이벤트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는 하이브리드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유동적이고 모바일한 팝업이나 IT를 접목한 스마트 팝업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콘텐츠 측면에서는 팝업스토어가 더욱 테마파크화될 전망이다. 이미 이벤트, 전시, 공연 등이 결합된 복합 경험을 제공해 온 만큼 향후에는 여행 콘셉트 팝업 등 경험의 범위를 넓히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점차 일상적인 쇼핑 그 이상의 것을 팝업스토어에서 기대하게 되고 기업들은 이에 부응하기 위해 더 혁신적인 스토리텔링과 체험 디자인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팝업스토어의 홍수 속에 소비자의 선택은 더욱 까다로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만큼 차별화된 핵심 경험을 주지 못하는 진부한 팝업은 외면받고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지속가능성이나 사회적 가치까지 고려한 팝업스토어가 등장하면 MZ세대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친환경 소재로만 구성된 팝업 공간이나 지역 공동체와 상생을 도모하는 로컬 팝업 등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