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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25 Vol.242

MAY 2025 Vol.242

ESSAY

헤겔이 말하는
가족의 의미

글. 강용수



Profile. 강용수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니체 작품의 재구성> 등

5월은 가족의 중요성을 되새겨보는 달이다. 가족은 유교적인 전통이 확고했던 시대뿐만 아니라 개인주의가 팽배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철학자 가운데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 그래서인지 니체, 쇼펜하우어, 칸트 등 평생 독신이었던 철학자는 자신의 삶을 반영하듯 가족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했던 헤겔(G. W. Hegel)은 가족을 공동체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봤다. 헤겔은 그의 법철학 강요에서 가족을 시민사회와 국가를 이루는 인륜태(Sittlichkeit)의 기본으로 삼았다. 가족은 자유로운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함으로써 구성된다. 또한 두 사람이 성적인 관계를 통해 아이를 낳으면 가족이 비로소 완성된다. 이러한 사랑-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헤겔의 가족관은 우리의 상식적인 결혼관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헤겔에 따르면 사랑의 계기는 내가 나만을 위한 독립적인 인격이 아니며 스스로 결함을 지닌 불완전한 인간으로 느끼는 데 있다. 사랑은 혼자서 불가능하며 타자의 인정이 꼭 필요하다. 따라서 나 자신이 타자 안에서 발견되고 인정받아야 사랑이 성립된다. 사랑을 받을 수 없다면 사랑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타인도 내 안에서 발견되고 인정받을 때만 사랑의 감정이 생긴다. 타인이 없이는 나의 삶이 불완전해질 거라는 걱정이 이성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는데 감정만으로 부족한 사랑은 자녀를 낳음으로써 채워진다.
두 이성의 사랑을 객관적으로 완성한 자녀는 가족에서 절대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헤겔의 가족관은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편협해 보인다. 우리는 무엇보다 가족의 해체를 심각한 문제로 경험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연애와 결혼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출산을 기대하는 것이 어렵다. 또한 결혼해서 가정을 잘 꾸리던 부부가 자녀가 성년이 된 후 황혼이혼을 결정하는 일이 많다. 그만큼 전통적인 가족이 갖던 연대의 끈이 약해지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든, 결혼이든, 출산이든 각자가 선택하는 자유를 존중하는 일이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사랑하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아도 되고, 결혼생활이 족쇄로 느껴진다면 헤어질 수도 있다. 자녀도 한때 사랑했던 과거에 대한 기억일 뿐 현재의 행복을 계속 보장할 수는 없다.
우리는 전통적인 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가족을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60년대, 1970년대만 해도 20대 결혼은 필수였으며 자녀가 4~6명이 되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활력으로 넘쳤다면 이제 시골에서는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옛날의 기준으로 정상적인 가족과 비정상적인 가족을 나누는 것은 좋지 않다. 모든 구성원을 갖춘 온전한 가족과 그렇지 못한 결손 가족으로 본다면 현실에는 가족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 독신, 비혼, 이혼 등 1인 가족으로 홀로 살기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족의 따뜻한 사랑과 정이 사라지고 있다면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이웃의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