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REPORT
MAY 2025 Vol.242

MAY 2025 Vol.242

BOOK REVIEW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

훌륭한 은행과 나쁜 은행. 윤종원 전 IBK기업은행장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한 문장을 빌려 둘의 차이를 설명한다.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고 적었다. 윤 전 행장 역시 훌륭한 은행은 비슷한 이유로 성공하지만 나쁜 은행은 각각의 이유로 망한다고 했다.

글. 조현숙

Profile. 조현숙
-현 중앙일보 경제부 보조데스크(부장)
-<고건 회고록(공인의 길)> 편저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

지은이 윤종원
출판사 한국경제신문
분야 경제경영 > 금융/제테크
발행일 2025년 2월 28일



윤종원 前 IBK기업은행장이 2020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의 은행장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지난 2월 출간된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 이다. 그의 출발은 금융인이 아니었다. 제2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재무부 사무관으로 관직에 먼저 발을 들였다.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주OECD대표부 대사를 거쳐 대통령실 경제수석까지. 경제 전문 관료로 더없이 화려한 이력을 쌓은 그였지만 은행장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금융 현장은 역시나 교과서와 달랐다. ‘낙하산’ 소리도 들었고 취임하자마자 코로나 위기도 맞았다. 부채가 원인이 아닌, 유례없는 경제위기였다. 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 역할이 중요한 때였다.

유례없는 위기, 유례없는 대처

기업은행의 주 고객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았다. 초저금리 특별대출 땐 한 지점에 하루 1,000건 넘는 신청이 몰릴 정도의 비상시기였다. 기업은행이 취급하는 소상공인 대출은 보통 한 해 1조 원 남짓이었으나 코로나 확산 직후 6개월 만에 7조8,000억 원이 공급됐다. 건수로는 40만 건에 달했다. 업무 시간에는 신청받고, 철야근무를 불사하며 심사한 직원들에 대한 고마움이 컸다고 했다.
또한 380억 원 정도를 예금한 고객의 ‘갑질’에 직원이 병가를 냈다는 소식에 분노해 법적 대응에 나섰고, 문제 사례를 전수 조사해 대책을 만들었다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그는 ‘고객은 왕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래야 갑질이 사라진다고 했다.

은행업이란, 금융이란

그는 은행장으로 일할 때의 기록과 함께 은행업이란 무엇인지, 금융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에 대한 나름의 답을 책에 담았다. 훌륭한 은행과 나쁜 은행을 가르는 기준은 결국 하나, 신뢰로 귀결된다. 그는 “시장과 고객, 국민의 신뢰를 얻으면 흥하고 잃으면 망한다”라고 강조하면서 은행장 임기 내내 바른 경영과 혁신금융을 경영 철학으로 내세웠다.
“과거의 눈으로는 미래를 볼 수 없다”라고 그는 강조한다. <대한민국 금융의 길을 묻다>의 부제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의 3부에서 금융의 길을 현장에 적용한 혁신 사례들을 통해 금융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관한 사례를 제시한다. 디지털 전환, 금융 주치의 프로그램, 혁신 스타트업을 위한 모험 자본 공급 등 금융이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전략을 제시한다.

과거의 눈으로는 미래를 볼 수 없다

그는 담보와 재무제표만으로 중소기업을 평가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쿠팡을 예로 들었다. 2021년 미국 증시에 상장한 쿠팡에 9조 원 넘는 돈이 몰렸다. 미래가치를 보고 전 세계 투자자들이 투자에 나섰다. 하지만 기업은행에서 재무적 지표를 토대로 산출한 쿠팡의 신용대출 한도는 ‘단돈’ 2,000만 원이었다.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기업에 더 많은 돈이 흘러가도록 금융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그는 주문했다. 기업의 잠재력을 발견해 지원하는 건 은행뿐 아니라 국가 경제를 키우는 일이라고 했다. 과거의 눈으로 보면 은행의 자산도 과거로 간다는 경고와 함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