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 기업
성장을 위한 과제
美 시장 교두보 삼아
신흥국 개척 힘써야
국내 바이오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2023년 매출 규모가 연평균 11%의 성장률을 나타내며 최근 5년간 높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바이오산업 역시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알아본다.
글. 이현우
Profile. 이현우
-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산업혁신본부장
- 전 주보스턴 부총영사, 기획재정부 개발협력과장
- 외무고시 30회(외교부 경력 25년)
바이오와 글로벌 패권 경쟁
반도체와 AI를 둘러싼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바이오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주요국 정부는 바이오산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고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비만 치료제, 유전자 편집(CRISPR), 항체약물접합체(ADC), 오가노이드 등 혁신적 치료법이 등장하고 있으며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바이오산업은 기술과 자본이 집약된 미래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및 리쇼어링 정책 등을 통해 바이오 분야의 주도권을 확보하려 하고 유럽연합(EU)은 제약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각종 개혁 법안을 추진 중이다. 중국 역시 ‘14차 5개년 바이오 경제 발전 계획’을 통해 제약·바이오산업의 개혁·개방을 가속화하며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최근 1년간 글로벌 기술 수출의 3분의
1이 중국 기업과의 거래에서 발생할 정도로 중국 바이오 기업들의 성장세가 예사롭지 않다.
현재 글로벌 의약품 시장 규모는 1조6,000억 달러(약 2,240조 원)이며 2028년에는 2조2,400억 달러(약 3,00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반도체(6,500억 달러)와 자동차(3,600억 달러) 시장을 합친 것보다 두 배 이상 크다. 각국이 바이오산업을 차세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글로벌 50대 제약사에 한국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한국의 글로벌 제약 시장점유율은 1.7%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가 한 수 아래로 생각하는 인도의 제약사 선파마(Sun Pharma)는 FDA 승인 의약품 수에서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인구 1,000만 명도 되지 않는 이스라엘의 제약사 테바(Teva)는 글로벌 제네릭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을 선제적으로 공략한 결과다. 다행히 최근 한국 제약·바이오산업도 긍정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제약·바이오산업을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지정했으며 신약 파이프라인 개수는 3,233개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SK바이오팜의 세노바메이트, 유한양행의 레이저티닙 등 혁신 신약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으며 삼성·LG·롯데·현대 등 대기업들의 바이오산업 투자도 늘고 있다.
글로벌 공략의 디딤돌, 미국
한국 제약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충분한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내수시장에 안주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국내 10대 광고주 중 3분의 2가 제약기업이었지만 이후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다른 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동안 제약 산업은 40~50년을 제자리걸음 했다. 이제 글로벌 시장 공략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특히 미국은 글로벌 의약품 시장의 40%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다. FDA 승인은 글로벌 시장 확장의 초석이 된다. 그러나 현재 FDA 승인을 받은 국산 의약품은 30여 개에 불과하며 미국에서 의미 있는 매출을 기록한 사례도 제한적이다. 인허가 비용, 복잡한 유통·보험 체계, 높은 규제 장벽이 주요 장애물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180일 독점권을 확보할 수 있는 퍼스트 제네릭, FDA의 쇼티지 품목을 공략하는 전략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FDA 승인 의약품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하는 글로벌 M&A 전략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미국 시장에서 성공적인 사례를 확보하면 이를 레퍼런스로 삼아 신흥국 시장에서도 규제 장벽을 낮출 수 있다. 미국을 교두보로 삼아 글로벌 시장을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 어떻게 공략해야 하나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첫째, 오픈 이노베이션과 신흥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과의 공동 연구개발, 기술 제휴를 통한 경쟁력 확보도 필수적이다. 한국 기업들은 바이오 USA, CPHI 등 글로벌 전시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화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바이오 USA 및 CPHI 전시회에 참가하는 기업 수가 미국, 영국에 이어 2~3위
를 차지할 정도다. 또한 글로벌 넘버원 클러스터인 보스턴의 개방형 사무소인 CIC(케임브리지 이노베이션 센터)에 한국 기업들이 모여들고 있으며 스위스 바젤과의 오픈 이노베이션 협력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아세안, 중남미 등 파머징(Pharmerging) 시장도 한국 기업이 놓쳐서는 안 될 기회다. 한국이 WLA(WHO-Listed Authority)로 등재됐지만 여전히 개별 국가에서 참조국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신흥국 규제당국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GMP MRA(상호인정협정) 체결을 추진해야 한다. 또한 국제 조달 시장도 주목해야 한다. 미국 연방정부와 UN 관련 국제기구의 의약품 조달 시장은 연간 수십조 원 규모지만 한국 기업들의 점유율은 1% 미만이다. FDA 승인 의약품을 보유한 기업들은 국제 조달 시장 진출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둘째, 민관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제약·바이오산업은 국가별 규제가 복잡하고 정책 변화가 빠른 분야다. 트럼프 행정부는 의약품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예고했으며 바이든 행정부 시절부터 초당적으로 추진된 생물보안법(Bio Secure Act)은 기업들에 도전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통상 및 규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의 협력 체제가 필수적이다. 정부와 협회, 연구기관, 기업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코리아 원팀(One Korea)’ 전략을 통해 글로벌 진출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바이오 유럽에서 협회와 한국거래소, 코트라 등이 공동으로 코리안 나이트를 개최해 글로벌 이해관계자들에게 한국 시장과 제약바이오산업을 알린 것처럼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글로벌 브랜드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시장을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 제약·바이오산업은 단순한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국가적인 전략이 필요한 분야다. 각자도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정부, 기업, 연구기관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이제 더 이상 국내 시장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K-파마(Pharma) 성공 시대를 위해 글로벌로 전력 질주해야 할 때다. 한국의 제약 산업이 반도체, 자동차처럼 글로벌 파워하우스로 도약할 수 있도록 모든 이해 당사자가 손을 맞잡고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