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죽음에 대하여 :
쇼펜하우어
그리고 니체
글. 강용수
Profile. 강용수
- 고려대학교 철학연구소 연구원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니체 작품의 재구성> 등
염세주의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는 의외로 장수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최소한 70년을 살고 나서 100년도 더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의 전반기인 40년 동안은 경험을 쌓고, 30년은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의 시간이 필요하다. 쇼펜하우어는 인도의 <우파니샤드>의 견해에 따라 자연스런 인간의 수명을 100살로 보았다.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는 고통이 없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잠을 자다가 숨을 거두는 것을 호상이라고 하듯이 쇼펜하우어는 잘 늙어 힘이 빠져야 죽는 순간에도 큰 고통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나이가 들어 체력이 저하되는 일은 죽음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자연의 섭리다. 큰 병 없이 크게 숨 가빠하거나 경련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좋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 건강을 위해 지나치게 애쓰지 말고 건강을 잃는 것을 받아들여야 된다. 최고의 행복은 부, 명예나 권력과 같은 것이 아니라 큰 고통 없이 숨을 거두는 일이다. 나이가 들면 건강관리를 통해 젊어지려 애쓰지 말고 늙어가는 과정을 받아들여야 된다. 건강해서 너무 기력이 강하다면 죽을 때 마지막까지 살려고 발버둥 치는 사투 때문에 많은 고통이 따를 수 있다.
반면 니체는 너무 오래 살지 말 것을 당부한다. 죽음에 대한 올바른 태도란 무엇인가? 너무 오랫동안 살다가 늦게 죽는 사람이 많지만 어떤 사람은 더러 너무 일찍 죽기도 한다. 인간은 언제 죽어야만 하는가? 차라투스트라는 “제때 죽도록 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우선 제때 살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제때 죽을 수 있겠는가? 제때 죽을 수 있기 전에 먼저 제때 살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차라투스트라가 권하는 죽음은 “내가 원하여 찾아오는 자유로운 죽음”이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자기완성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생이 완성되는 시기는 언제인가? 차라투스트라는 삶의 완성도를 과일에 빗대어 설명한다. 과일이 가장 잘 익었을 때는 맛이 좋다. 그러나 남에게 계속 맛을 보이는 일이 없어야 하며 너무 오랫동안 사랑받기를 바라서도 안 된다. 과숙(過熟)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과일은 신맛을 내는 시기에 일찍 늙어 버려서 제맛을 못 내고 썩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정신이 먼저 늙고 생에 실패한 자는 죽는 일에도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조숙(早熟)도 원할 일이 아니다. 또한 늦은 나이에도 세상의 명성과 명예와 결별하지 못해 아직 나뭇가지에 매달려 버티고 있는 사람은 비열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삶에 대한 집착 또한 버려야 된다. 잘 죽기 위해서 우리는 삶을 누리는 법과 대지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웃는 법도 배워야 한다. 삶과 죽음의 이치를 잘 이해하게 되면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움이 없다. 잘 산 사람들만이 죽음을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완전의 경지에 이른 것, 무르익은 모든 것은 죽기를 바란다. 그러나 설익은 것들은 하나같이 살아남기를 바라는데 서글픈 일이다.” 자신의 삶을 완성한 사람은 집착이나 두려움이 없이 자유롭게 죽음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