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공공조달,
보호와 경쟁의 균형
글. 배관표
경쟁을 지키기 위해 경쟁을 제한한다. 공공조달에서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방식은 오랫동안 당연한 전제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그 전제가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유효한지는 다시 물어볼 필요가 있다.
공정경쟁의 예외,
중소기업 보호의 논리
정부나 공공기관은 국가계약법에 따라 물품 및 용역을 구매할 때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하며 구매자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자와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입찰의 핵심은 공정한 경쟁이다. 특정인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공공조달에는 경쟁을 제한하는 제도도 있다. 미국에는 연방사업에서 자국 제품만 구매하도록 하는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 제도가 있고, 한국에는 공공기관이 중소기업 제품만 구매하도록 하는 공공구매제도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도다. 경쟁을 제한하면서까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특별한 제도인 만큼 이를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해야 중소기업에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고민이 필요하다.
정부는 3년마다 중소기업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공공조달 제품 목록을 발표한다. 2024년 12월 지정된 품목은 610개이며 2027년 말까지 유효하다. 예를 들어 시설물 경비 서비스가 여기에 포함돼 있다. 공공건물 경비 입찰이 나오면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처음부터 참여할 수 없다. 다만 예외는 있다. 위험을 원격으로 관제하는 기계경비업은 큰 기업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경비원이 직접 현장에 서는 일은 중소기업에, 첨단장비를 활용하는 일은 대기업에 맡기는 방식이다.
이 제도의 뿌리는 깊다. 1965년 도입된 단체수의계약 제도가 전신이다. 중소기업 협동조합과 가격·수량을 협의해 구매하도록 한 제도였다.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가격을 협의로 정하다 보니 납품가는 높아졌고, 조합이 연고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부당한 비용을 떼어 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감사원 지적을 받은 끝에 제도는 폐지됐고 2006년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도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단체수의계약에 경쟁 요소를 추가한 제도로 평가할 수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는 드론을 들 수 있다. 중국산 드론이 세계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던 2018년, 정부는 드론을 경쟁제품으로 지정했다. 공공조달 시장에서만큼은 중소기업끼리 공정한 조건에서 경쟁하도록 한 것이다. 그 덕분에 중소기업들은 안정적인 내수시장을 발판 삼아 기술을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지금 한국 드론산업을 이끄는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그렇게 성장했다. 이 제도는 대기업과 중견기업뿐 아니라 해외 기업으로부터도 국내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음을 보여줬다.
보호의 역설,
성장과 경쟁을 가로막는 그림자
그렇다고 지금의 제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정 업체로의 쏠림은 고질적인 문제다. 구매담당자들이 가격이나 품질을 꼼꼼히 따지지 않고 늘 사던 것만 사는 관행이 원인이다. 독과점이 지속되면 해당 제품을 경쟁제품 목록에서 제외하거나 일시적으로 대기업·중견기업의 참여를 허용하는 등 정부도 여러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돼야 할 것은 구매담당자의 관행을 바꾸는 일일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중소기업이 제도 안에 안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입찰 참가 자격을 잃는다. 성장이 곧 불이익이 되는 구조다. 이를 두고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비판하기는 쉽다. 하지만 전체 시장에서 공공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현실을 감안하면 이를 중소기업만의 책임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정부는 초기 중견기업의 참여를 허용하는 등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 아울러 민간 시장을 키워 기업들이 성장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는 근본적인 해법도 함께 찾아야 한다.
사업체 수로 보나 일자리 수로 보나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압도하고, 매출을 모두 합치면 대기업에 못지않다. 무엇보다 파괴적 혁신은 중소기업에서 시작된다. 신기술로 무장하고 빠른 의사결정으로 틈새를 파고드는 일, 대기업이 하기 어려운 일을 중소기업이 해낸다. 그렇기에 지원의 방향이 중요하다. 도전하는 기업에 더 유리한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공공구매제도의 다음 과제다.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도를 다시 들여다봐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Profile. 배관표
- 충남대학교 국가정책전문대학원 교수
- 한국규제학회 홍보위원장
- 좋은규제시민포럼 홍보협력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