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우리 공장에
묻는다
‘표준화된 제조 데이터
있는가?’
글. 문병성
산업 현장 인력난 속에서 경영자들은 묻는다. 다음 채용은 사람일까, 로봇일까. 휴머노이드에 대한 기대도 커진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도입 이후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는 이미 작동 중인 AI 자동화의 다음 단계로 볼 필요가 있다.
자동화에서 AI로, 산업 현장의 전환
경남의 한 특수 주물 공장의 사례를 참고하겠다. 주물 산업은 제품 크기나 형상이 다양하고 공정 변수도 많아 자동화가 어려운 분야로 꼽혀 왔다. 이 공장은 십수 년 전부터 자동화 전환에 착수해 12개 공정 가운데 9개 공정에 로봇과 자동화 설비를 도입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스마트공장 지원사업도 힘이 됐다. 그 결과 생산성은 높아지고 관리와 인력 부담은 줄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는 않았다.
다품종 소량 생산과 더 높아진 고객의 품질 요구, 그에 따른 공정 관리의 복잡성은 단순 반복 자동화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웠다. 결국 이 기업이 다시 주목한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예측하는 AI를 활용한 자동화의 고도화였다.
산업계는 공정 최적화, 지능형 검사, 품질 예측, 산업 안전 등 다양한 AI 솔루션을 개발·도입하고 있다. 그중에서 산업 현장에서 높은 성과를 보인 AI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보는 일’, 즉 AI 시각이다. 로봇과 자동화 설비에 적용되며 복잡하고 정밀한 조립·가공 작업의 효율을 높였다. 또한 숙련 작업자가 육안으로 찾던 미세 불량을 잡아내 사출·가공·조립 공정에서 검사 정확도를 높이고 시간을 줄였다.
둘째는 ‘미리 아는 일’, 즉 AI 예측이다. 공장 곳곳의 센서는 온도·습도·분진 등 환경 변화를 분석해 공정 조건의 변동을 추적한다. 이는 생산성과 품질 관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설비의 전력·진동·소음 데이터를 통해 이상 징후를 사전에 감지해 다운타임을 줄이고 공정 효율을 높인다.
셋째는 ‘옮기는 일’, 즉 물류의 자율화다. 사람이 무거운 자재를 옮기던 자리에 자율주행로봇(AMR)이 들어왔다. 무인운반차량(AGV)과 달리 고정된 마커 없이도 장애물과 작업자를 피해 최적 경로로 제품을 운반한다. 이러한 물류 자율화는 대형 물류창고를 넘어 최근에는 중소형 의류업체 창고까지 확대되고 있다.
장밋빛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
실제로 효과는 있었다. AI 자동화는 가동률 향상과 불량률, 산업재해 감소와 같은 분명한 성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현장의 체감은 기대와 같지 않다.
가장 큰 차이는 기대 비용과 투자 회수에서 드러난다. 흔히 1~2년의 회수 기간을 말하지만 이는 기본 설비만 고려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공정 재설계와 기존 설비 연동 비용까지 더해져 투자 규모가 크게 늘어난다. 여기에 초기 안정화 과정에서의 생산성 저하, 운영 인력 재교육, 유지보수 비용까지 감안하면 총비용은 예상보다 훨씬 커진다. 협동로봇처럼 설치와 운영이 용이한 경우에도 생산량은 늘었지만 회수 기간이 길어져 부담을 느끼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다.
또 다른 현실은 예외 상황이다. 로봇과 AI 자동화는 정해진 환경과 잘 정의된 작업에서는 탁월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에는 취약하다. 돌발 상황이나 비정형 환경에서는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해진다. 물류센터 자동화가 빠르게 확산되면서도 완전 무인화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 자동화에서 더 어려운 과제는 데이터다. 반복 자동화는 작업 매뉴얼만 있어도 어느 정도 가능했다. 그러나 AI는 다르다. 스스로 판단하려면 학습을 위한 과거 작업 데이터가 필요하다. 어떤 조건에서 불량이 발생했고, 어떤 진동이 고장의 전조였는지 학습해야 한다. 데이터의 부족은 AI 학습의 효율을 저하시키고, 이는 결국 도입된 AI 자동화가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문제는 많은 산업 현장에 이런 데이터가 충분히 축적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데이터가 있어도 표준화돼 있지 않거나 설비마다 형식이 달라 바로 활용하기도 어렵다. 누구에게나 공개된 인터넷의 데이터로 학습하는 언어 AI와 달리 제조 데이터는 기업 경쟁력 그 자체이기 때문에 외부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휴머노이드의 부상, 비용과 범용성의 기대
이 지점에서 휴머노이드가 주목을 받는다. 실제로 자동차 공장이나 물류 창고에서 부품을 선별하고 상자를 나르는 실증 작업들이 이뤄지고 있다. 아직은 제한된 환경에서의 시험 운용 단계이다. 하지만 휴머노이드를 전시 기술이 아니라 노동력의 연장선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제조업이 휴머노이드에 기대를 거는 가장 큰 이유는 초기 비용의 절감이다. 환경의 변경이나 공정 재설계 없이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공장과 산업 현장은 애초에 사람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작업대 높이, 손잡이 위치, 계단 구조, 운반 방식, 심지어 공구와 설비까지 모두 인간의 몸에 맞춰져 있다. 과거 로봇이나 AI 자동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별도의 설비나 레이아웃 변경이 필요했다. 하지만 사람과 비슷한 형태를 가진 휴머노이드는 기존 환경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범용성도 매력이다. 종래의 AI나 로봇은 특정 공정, 특정 작업에만 특화돼 있었다. 반면 언어, 시각, 행동이 결합된 로보틱 파운데이션 모델이 적용된 휴머노이드는 다양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극단적인 예로 오전에는 부품 상자를 나르던 로봇을 오후에는 검사 공정에 투입하는 식이다. 이는 다품종 소량 생산 체제로 변화하는 중소 제조사에 엄청난 매력이다.
기대와 한계 사이, 그리고 지금의 준비
하지만 여기에도 냉정한 현실은 있다. 휴머노이드는 아직 느리고 비싸다. 작업 속도는 숙련 노동자를 따라가기 어렵고, 가격 역시 중소기업이 쉽게 도입할 수준이 아니다. 안정성 검증도 더 필요하다. 넘어지지 않고, 사람과 안전하게 협업하며, 다양한 변수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휴머노이드 역시 자동화가 겪었던 제약, 즉 비용, 환경 적응, 유지보수 문제에 자유롭지 않다.
물론 최근 연구되는 AI가 적용된 휴머노이드의 두뇌는 그간 로봇이 갖지 못했던 상식 수준에서의 작업처리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는 새로운 공정과 공정 변화 그리고 예외처리에 있어서 더욱 탁월한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자사에 특화된 공정 데이터와 이를 기반으로 한 로봇의 행동 데이터 부족은 여전히 휴머노이드가 즉각적인 효과성을 발휘하지 못하게 할 대표적인 장벽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제조업은 휴머노이드를 가장 먼저 도입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다. 반복 작업이 많고 인력난이 심하며 투자 효과를 비교적 명확히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휴머노이드의 도입 여부에 대한 고민이 아니다. 그보다 먼저 현장의 공정이 충분히 표준화되어 있는지, 데이터가 제대로 쌓이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휴머노이드든 기존 자동화든 AI는 결국 데이터와 표준화된 환경 위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
또한 자사 현장에서 축적되는 데이터를 면밀히 분석하다 보면 휴머노이드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부분과 방법이 가늠될 수도 있다. 또는 효율적 활용을 위해 지금 더 축적해야 할 데이터의 요구 사항을 파악할 수도 있다. 오늘의 현장 정비가 내일의 자동화 경쟁력을 결정한다.
휴머노이드는 갑자기 공장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 현장에 들어온 AI 자동화의 다음 단계로 조용히 준비되고 있을 뿐이다. 미래는 전시장보다 생산 라인에서 먼저 시작된다.
Profile. 문병성
- ㈜싸이텍 기술이사, 경영지도사
- 전 에어로플렉스 한국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