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의 시대를 넘어
밈이 전략이 되는 순간
글. 이승윤
인터넷에서 웃고 넘긴 이미지 하나가 어느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상징이 돼 돌아온다. 누군가의 농담처럼 시작된 장면은 빠르게 복제되고, 조금씩 변형되며, 전혀 다른 의미를 얻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밈(Meme)은 사람들이 세상을 해석하고 공감하는 방식이 된다. 가볍게 소비되던 ‘짤’이 문화의 언어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변화다.
바이럴을 넘어 밈이 되는 순간
2023년 말 미국의 한 여성이 틱톡에 짧은 영상을 올렸다. 자신의 차량이 화재로 완전히 타버린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좌석은 녹아내렸고 대시보드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영상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컵홀더에 꽂혀 있던 스탠리(Stanley) 텀블러였다. 겉면에는 그을음이 남아 있었지만 형태는 놀랍게도 멀쩡하게 남아 컵홀더에 꽂혀 있었다. 차량의 주인인 여성은, 심지어 여전히 텀블러에 얼음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남겼다.
“불이 나서 목이 마르나요? 스탠리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Thirsty after you catch on fire? Stanley’s like, “No problem, I gotchu.)”라는 위트 있는 메시지를 담아서 영상을 마무리했다. 이 영상에는 어떤 광고 문구도, 브랜드 태그도 없었다. ‘스탠리 텀블러는 불에도 손상이 안 되며 강력한 보온보랭 효과가 있다’는 단순한 메시지는 소비자가 붙인 해석이었고 그 해석은 순식간에 바이럴이 됐다.
영상은 수백만 회 이상 자발적으로 소비자들 사이에 공유되며 ‘스탠리는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브랜드’의 상징으로 재생산되기 시작했다. 이 영상이 퍼진 이후 사람들은 “스탠리는 불에도 안 죽는다”, “이건 텀블러가 아니라 생존 장비다”, “어떤 재난 상황에도 스탠리만 있으면 된다”라는 형태로 스탠리를 대상으로 다양한 이미지와 텍스트들을 자발적으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하나의 바이럴 영상으로 인해서 브랜드가 밈화되기 시작한 순간이다.
스탠리의 이 사례는 흥미로운 영상이 단순하게 바이럴에 멈추지 않고 수많은 사람에게 재생산돼서 밈으로 전환된 경우라 하겠다. 비슷하게 2023년 맥도날드가 그들의 마스코트 캐릭터 중 하나인 그리머스(Grimace) 생일을 기념하며 한정 기간 동안 만들어 판매한 그리머스 셰이크 역시 밈 현상을 만들었다. 이 제품이 판매되기 시작한 이후 틱톡에서 이 셰이크를 마시고 음료를 입에 머금은 채로 죽는다거나 세뇌를 당해 그리머스의 추종자가 되는 형태의 재미있는 영상들이 폭발적으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부터 그리머스 캐릭터는 설명할 수 없는 혼돈의 존재로 재해석되기 시작했고 평범한 캐릭터에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진 밈적 존재가 됐다. 괴상한 이 열풍을 맥도날드는 불편하게 여기거나 공식적으로 해당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는 액션을 취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쿨하게 받아들였다. 그 결과 맥도날드는 올드한 패스트푸드 브랜드에서 괴상한 밈을 허용하고 견딜 수 있는 브랜드로 젊은 세대들에게 인식됐다. 이는 밈을 긍정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브랜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밈을 통제하지 않는 것이 전략인 시대
1976년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자신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처음 언급한 밈이란 용어는 모방된 것, 흉내의 결과물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도킨스는 밈을 문화적 유전자로 봤다.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복제성, 복제 과정에서 약간씩의 변형이 발생하는 변이성, 더 재미있고 공감되는 것만 살아남는다는 선택성이 밈의 대표적인 속성이다.
최근 들어 기업이 일방향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는 커뮤니케이션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발화자의 역할을 하고 본인들의 주도하에 콘텐츠를 유행시키는 쌍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밈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밈은 기획해서 만들어지기 힘들다. 기업에 의해 인위적으로 광고 형태로 만들어진 이미지나 영상은 소비자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업이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밈을 만들 수는 없지만 밈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을 자연스럽게 설계하거나 우연하게 발생한 밈에 대해서 적절한 형태로 대응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앞서 스탠리 텀블러와 맥도날드 사례 역시 브랜드가 직접적으로 한 일은 없다. 다만 이후 엄청난 바이럴이 일어났을 때 두 브랜드 모두 밈이 퍼져나가는 과정을 통제하지 않았고 쿨하게 받아들였다.
디지털 환경에서 브랜드는 더 이상 혼자 말하지 않는다. 이제 브랜드의 경쟁력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소비자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단순한 짤의 시대를 지나 밈이 전략이 되는 시대를 우리는 맞이하게 됐다.
유튜브 콘텐츠 <카니를 찾아서>(왼쪽)
브랜드·기업들의 밈 활용 사례(중간, 오른쪽)
Profile. 이승윤
- 건국대학교 경영대학 마케팅 전공 교수
- 디지털마케팅연구소 디렉터
- < AI 마케터가 온다>, <디지털로 생각하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