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셀럽’의 시대
브랜드들도 협업 나섰다
버추얼 휴먼. 가상 캐릭터는 이제 가상의 차원을 넘어 현실로 들어오고 있다. 고도화된 기술력과 이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수용이 맞물려 향후 마케팅의 차원을 바꿀 차세대 파트너로 등장했다.
글. 정덕현
Profile. 정덕현
- 대중문화 평론가
- <대중문화 트렌드 2018> 등
버추얼 휴먼, 디지털 셀럽의 탄생
최근 한국의 전통 한복 브랜드로 걸그룹 블랙핑크의 ‘코첼라’ 한복 의상을 제작했던 ‘오우르 by 금단제’가 한국 최초의 버추얼 인플루언서 로지와 사계절 한복 화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계절 속에 담긴 전통 한복의 다양한 변주와 아름다움을 최신 AI 기술, 버추얼 콘텐츠 제작 기술과 결합해 만든 이 화보 프로젝트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무는 비주얼을 선보였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로지는 약 17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한 인기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패션, 뷰티,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국제구호개발 NGO 플랜 인터내셔널 코리아의 공식 홍보대사로 위촉됐고 태국 끄라비의 홍보대사로 태국의 휴양지를 배경으로 한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 정도면 인플루언서의 차원을 넘어 ‘디지털 셀럽’이라고 할 만하다.
2020년 8월 싸이더스 스튜디오엑스가 처음 로지를 국내 최초 소통 가능한 가상 인플루언서로 등장시켰을 때만 해도 과연 이 이질적인 존재가 이만큼의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미 90년대 말 사이버 가수 아담이 등장한 적이 있었지만 대중적 주목만큼 기술적 한계로 인해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없었던 전례가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현재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실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해진 버추얼 이미지와 애니메이션 기술은 물론이고 이제 AI가 결합돼 실시간 소통 구현이 불가능한 일이 아닌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니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활용은 다양한 분야에서 급물살을 타고 진행되기 시작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그간 고전적인 아날로그 기반의 장인 정신을 전면에 내세우던 명품 럭셔리 브랜드들이 이들 버추얼 인플루언서와 협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19세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140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릴 미켈라(Lil Miquela)는 프라다, 발렌시아가, 샤넬 등 최고급 패션 브랜드와 협업했고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 글로벌 광고에도 참여했다. 로지 역시 샤넬, 티파니앤코 등 명품 브랜드와 협업했고 신한라이프와의 파트너십 캠페인에서 ‘라이프에 놀라움을 더하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등장해 유튜브 조회수 1,000만 뷰를 넘기며 폭발적인 화제를 불러 모았다. 명품 브랜드들은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미래적인 이미지를 더해 고전적인 자신들의 브랜드에 ‘힙한’ 이미지를 부여하려 한다. 그것이 현재의 MZ세대들과 소통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무궁무진해진
버추얼 휴먼의 활용과 리스크들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관리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는 24시간 전 세계와 지속적인 소통이 가능하고 여러 공간에서의 동시다발적인 활동도 가능하다. 셀럽이 됐을 때 특히 중요해지는 사생활 리스크도 전혀 없다. 또한 특정 마케팅에 있어서 데이터에 근거한 최적화된 접근방식과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 이러한 장점들은 현재 버추얼 휴먼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추동하고 있다. 글로벌 버추얼 인플루언서 시장은 2024년 기준 60억6,000만 달러로 추정되고 있는데 2030년까지 458억8,000만 달러 규모로 급증할 것이라 예견되고 있다. 이러한 급성장은 다양한 브랜드가 독특한 디지털 페르소나를 활용해 광범위한 소비자들에게 도달하려는 전략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버추얼 인플루언서가 디지털 셀럽의 개념이라면 버추얼 아바타는 이것이 일상 속으로 들어온 개념이다. 분신이라는 의미의 아바타가 뜻하는 것처럼 이제 이 버추얼 기술은 가상 세계에 모두가 저마다의 아바타를 갖는 시대를 예고한다.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을 기반으로 한 실시간 맞춤형 메타버스에서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갖는 버추얼 아바타로 물건을 사고 공연을 보는 등의 다양한 활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실제로 구찌(Gucci)는 2021년 로블록스 게이밍 플랫폼에 ‘구찌 버추얼 가든(Gucci Virtual Garden)’을 론칭한 바 있다. 이 가상공간에서 사용자들은 개인의 아바타를 통해 독점적인 디지털 아이템을 구매했다. 이 캠페인은 출시 후 2주 만에 1,900만 뷰 이상을 기록하며 Z세대에게 혁신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버추얼 아바타 시장은 2030년에 2,700억 달러에 이르는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래의 버추얼 휴먼은 단순한 광고 모델을 넘어 고객 서비스, 엔터테인먼트,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맞춤형의 몰입형 경험을 제공하는 ‘상시 대화할 수 있는 고객 접점 인터페이스’로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새로운 가상의 존재가 만들어내는 도전과 윤리적 딜레마도 적지 않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생겨나는 신뢰성의 문제나 진짜 같은 가짜가 만들어내는 과몰입의 문제, 나아가 AI 기반의 버추얼 휴먼이 창작하는 콘텐츠에 대한 법적 책임 소재, 저작권 문제 등이 그것들이다. 새로운 기술은 늘 그만큼의 리스크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리스크들을 관리해 가면서 이미 도래한 버추얼 기술들로 바뀌고 있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마케팅 분야에 있어서 버추얼 휴먼이 가진 파괴력과 영향력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새로운 마케팅의 파트너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를 새로운 고객 경험 창출 기회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